고바위, 고바우, 고바이, 구배, 구베, 구뵈 뜻은 전부 같은 말

고바위, 고바우, 고바이, 구배, 구베, 구뵈 뜻은 전부 같은 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 우리말이라고 오해받는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고바위입니다.

흔히 경사높은 비탈길을 고바위길이라고도 한다. - 출처 : your7907

고바위, 고바우, 고바이의 뜻

우리가 흔히 고바위 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어원이 높을 '고(高)+바위'인 우리말 단어인 것으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발음으로 바꿔부르는 고바우, 고바이의 어미, '바우'와 '바이' 또한 각 지역에서 방언으로 사용되는 '바위'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만화 '고바우 영감'은 이 말과 관계가 없습니다. - 출처 : wikipedia

하지만 이 고바우라는 말은 일본어 코우바이(勾配, こうばい)에서 온 말입니다.

구배, 구베, 구뵈 뜻도 모두 일본어 코우바이(勾配, こうばい)에서 온 같은 말

우리말로 구배(勾配)라고 읽는 이 한자 단어의 뜻은 '기울기, 빗면, 경사'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Slope(슬로프), Gradient(그레디언트)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직각삼각형에서 빗면을 수학용어인 구배(코-바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 10%의 경사 빗면을 구배라는 한자로 표현한 도형설명 - 출처 : k-tai.watch

그런데 어쩌다 이게 우리말로 섞여 들어온 것일까요?

토목, 건설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구배

토목이나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의 수평과 수직을 잡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연히 수평, 수직이 맞지 않으면 거대한 붕괴사고를 초래할 수 있으니 꼼꼼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집 터를 닦는 현장에서도, 지어진 집에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도, 바닥을 마감할 때도, 되도록 완벽하게 수평을 잡을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보다 사람의 발은 매우 예민한 감각이기 때문에, 2mm 내외의 약간의 울렁인 경사만 있어도 발바닥으로 그 불편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보통 구배를 평평하게 잡는 것을 나라시라고 표현합니다.

나라시 뜻, 나라시하다

나라시(平し, 均し, ならし)는 발음과 뜻이 같지만, 한자가 다른 두가지 단어에서 기원합니다.

하나는 '평평하게 하다', 하나는 '평균을 내다'입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무언가를 평평한 수평상태로 만들기 위해 작업할 때 '나라시 한다'고 표현합니다.

콘크리트 수평화(공구리 나라시) 작업.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 출처 : mlbpark

지금은 현장에서 '수평 잡는다'라는 말로 많이 순화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배관설비, 타일시공 현장에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는 말, 구배

상술했듯 구배, 구베, 구뵈는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배관설비나 타일시공 현장에서는 이 구배라는 말이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바로 '적당한 경사를 만든다'는 의미로 '구배를 주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하수도배관에서 구배의 중요성 : 출처 : jhs1299

배관설비를 할 때 하수도는 압이 걸려있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경사가 있지 않으면 슬러지(Sludge, 오수침전물, 오물)가 쌓이게 되고, 물이 역류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역구배는 재시공(데나오시)을 해야한다. - 출처 : ltedrain

수도관의 지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배관 길이 1미터에 최소 1cm정도 경사를 주지 않으면 물을 많이 썼을 때 역류하거나 막힐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런 적당한 경사를 주는 것은 타일 시공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일 시공 현장에서 구배잡기

벽 타일은 별 관계가 없지만, 바닥 타일은 정확하게 경사로를 만들어야(구배를 잡아야)합니다.

만약 타일 시공 시 역경사(역구배)가 난다면, 물이 바닥 한 곳에 계속 고여있게 되고 결국 곰팡이 번짐과 타일 들뜸, 타일 깨짐 등의 시공불량으로 이어집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랫집으로 물이 새 피해보상을 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일 구배 방향. 모두 유가(하수 배출구)를 향해있다. - 출처 : lxzin

수세식 화장실에서 모든 바닥 타일은 유가를 향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타일 사이에 보이는 흰색 줄눈(메지)을 타고 물이 유가로 흘러들어가고, 최종적으로 하수도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일 구배 잡는 공정은 매우 어렵고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오랜 경험을 쌓은 숙련자가 아니면 쉽사리 도전하기 힘든 작업입니다.

그만큼 숙련된 타일 기술자는 구하기 어렵기에, 타일 역구배로 인한 시공불량 사례는 조금만 검색해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유가, 육가, 육까, 유카, 유우카 뜻은 모두 하수구 트랩

육가, 육까, 유카, 유우카라고도 불리는 유가는 흘려 내려보낸다는 뜻의 일본어 류우카(流下, りゅうか)에서 왔습니다.

'바닥 배수구', '하수구 트랩', '배수구 트랩'등으로 순화 권장되는 단어로, 뜻 또한 동일합니다.

하지만 건재 자재상에서 "트랩 주세요"라고 하면 "무슨 트랩요?"라고 되물을 것입니다.

건자재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트랩이 있기 때문에 타일 바닥면에 시공되는 트랩을 유가라고 부르는 것은 제대로 된 대체단어가 나오기 전까진 순화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정 욕실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유가와 긴 모양의 장유가 - 출처 : 철물나라, tmtcollective

고급스러운 모양의 타일 유가. 비싸고 예쁘긴 한데 실제로 우리집에 시공해 써보니까 머리카락 청소가 좀 힘들었다. - 출처 : tmtcollective

고급스러운 유가설치 디자인 - 출처 : tmtcollective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옵니다.

그래서 어떤 잘못된 단어가 잘못된 억양으로 전해지면, 그대로 변형되어 후대로 이어집니다.

적어도 어원과 사용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대체할 멋지고 새로운 우리말이 탄생할 지도 모릅니다.

네티즌을 대체한 누리꾼이나, 리플을 대체한 댓글 처럼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하고 예쁜 우리말을 잘 만들어 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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