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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정보

서울에서 연주된 기미가요 가사, 왜 부르면 안되는 곡인가

by cutekorean 2024. 3. 9.

목차

    서울에서 연주된 기미가요 가사, 왜 부르면 안되는 곡인가

    아...
    한국 일본 까는 컨텐츠 그만 만들고 싶다...

    둘 다 제발 개뻘짓 좀 하지마세요...
    저는 일본 문화가 좋아서 공부 시작한 사람이에요...
    반일 포스팅 좀 더이상 안하게 해주세요...

    2024년 2월 14일 서울에서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일왕 나루히토(德仁)의 생일파티가 열렸습니다.

    아무리 이웃국이라지만 본인이 참석하지도 않았고, 남의 나라 수도에서 당사자 없는 생일파티를 진행한 것도 괴상하기 짝이 없는데, 심지어 전범가인 기미가요(君が代)까지 연주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연주된 기미가요 가사, 왜 부르면 안되는 곡인가
    서울서 열린 일왕 생일행사, "기미가요 틀고 후쿠시마산 술 마셨다" - 출처 : 네이트 뉴스

    대한민국 독립 이후 한반도 땅에서 벌어진 공식적인 행사에 기미가요가 울려퍼진 것은 2023년 2월 16일 주한 일본대사관이 주최한 일왕 생일연 이후 두 번째 입니다.

    자국 왕의 생일이니 개인적으로 축하할 수는 있는 일이겠지만 왜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식민통치로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연회를 개최해 굳이 끝끝내 기미가요를 연주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한일 관계를 더욱 경색시켜 국교를 단절하고자 하는 어떠한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길가다 돌맞아 죽고싶어서 일부러 저러는 것일까요?

    대한민국은 친일 반민족행위자는 노상에서 패죽여 살해해도 그다지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 국가인데, 관련자들에게 폭력적인 사적 제제가 가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백범 김구 선생 암살자 안두희 정의봉 피습 살해사건

    1996년,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朴琦緖) 씨는 우연히 백범 김구 선생님의 가슴을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 암살범인 안두희의 개인정보를 알게됩니다.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 경, 안두희의 자택을 찾아간 박기서 씨는 자신이 수제로 제작한 둔기 '정의봉'으로 안두희를 박살(撲殺, 때려 죽이다), 살해하여 수감되었으나 복역 1년 5개월 만인 1998년 3월 1일 대사면으로 사면받고 12일 뒤인 3월 13일 출소하였습니다.

    백 투 더 동아/10월 23일]1996년 백범 암살범 안두희 씨 피살 - 출처 : 동아일보
    [백 투 더 동아/10월 23일]1996년 백범 암살범 안두희 씨 피살 - 출처 : 동아일보
    역사속 오늘>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피살 - 출처 : 연합뉴스
    <역사속 오늘>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피살 - 출처 : 연합뉴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자 안두희 정의봉 피습 살해사건수제 둔기 &amp;#39;정의봉&amp;#39;으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안두희를 개잡듯 때려죽이는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1년 반 만에 사면으로 석방된 박기서씨. - 출처 : 나무위키&amp;#44; 연합뉴스
    수제 둔기 '정의봉'으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안두희를 살해했음에도 1년 반 만에 사면으로 석방된 박기서씨. - 출처 : 나무위키, 연합뉴스

    '정의봉'이라 이름 붙여진 이 몽둥이는 중요한 살인 증거물로 경찰이 압수하였으나 재판 후에 박기서 씨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범행 도구는 형 선고와 함께 몰수하여 폐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지만 강력 범죄인 살인 흉기를, 그것도 범인 본인에게 돌려주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경찰에서도 이 사건을 일반적인 단순 살인 사건과는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는 폭력이나 범죄의 대상이 되어도 일반 국민에 비해 법적으로 더 약한 보호를 받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23년 처음 서울에서 연주된 기미가요 뉴스

    기미가요를 연주하지 않았다면 그냥 양국 대사가 모여 진심으로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화기애애한 연회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만 보면 분위기 못 읽고 급발진해서 남의 나라에서 자기들끼리만 아는 제국주의 씹덕 노래를 연주하는 바람에 양국 관계마저 싸해진 상황입니다.

    그뭔씹, 그게 뭔데 씹덕아 10덕아 뜻

    도쿄와 서울 사이의 거리는 1,147 km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루히토 일왕은 여기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죄가 있어서 1천 킬로미터가 넘는 서울에서 온갖 욕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과연 일왕 본인은 한국에서 기미가요를 연주하여 양국 관계를 경색시키는 이런 상황을 반길까요?

    자기 생일 축하해 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는데, 본인이 참석하지도 않은 먼 타국에서 자칭 '신하'라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연회를 열고, 마음대로 기미가요를 연주하는 바람에 듣지 않아도 될 공연한 욕을 욕받이 마냥 다 들어 처먹어야 하는 이런 상황을 과연? 일왕이 반길까요?

    일왕은 생일을 맞았을 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공연한 욕을 먹게 한 일본 외무성 사람들은 오히려 자국의 왕을 모욕당하게 한 죄를 스스로 인지하고 할복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서울서 울려 퍼진 '기미가요'…양국 관계 좋아져 틀었다? / JTBC 뉴스룸 JTBC News
    [자막뉴스] 서울에 처음 울려퍼진 '기미가요'...반대 집회 현장 / YTN

    2024년 두 번째로 서울에서 연주된 기미가요 뉴스

    "주한 日대사관, 올해 일왕 행사서도 기미가요 연주"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2023년 WBC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과 호주 경기에서 뜬금없이 울려 퍼진 주최국 일본의 국가

    최근 이러한 일본의 기묘한 행보는 뜬금없이 스포츠계에서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2023년 3월 9일 일본 도쿄 돔에서 펼쳐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B조 호주와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양국의 국가 연주가 끝나자 주최국인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가 울려퍼져 경기가 지연되었습니다.

    [WBC] 기미가요 논란 따져보니 엠빅뉴스

    기미가요(君が代) 뜻과 가사

    기미가요의 원본과 유래

    기미가요의 정확한 발음은 키미가요(きみがよ)이며, 직역하면 '그대의 시대' 라는 뜻입니다.

    헤이안 시대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교양으로 널리 유행했던 1100 수의 노래와 시(和歌, 와카, '일본 노래')를 엄선하여 집대성한 모음집인 일본의 국보,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 こきんわかしゅう, 고킨와카슈)이라는 총 20권의 책이 있는데, 키미가요는 이중 제7권에 수록된 343번 노래(古今集 巻第七 賀歌 343番, 고금집 권제칠 343번)를 현대 일본어로 번안한 곡입니다.

    고금화가집은 8세기 다이고(醍醐) 일왕의 명으로 수집, 번역되어 서기 905년에 완성되었으며, 특히 343번 노래 키미가요는 이전에 있었던, 누군지 명확히 전해지지 않은 어떤 일왕이 헨조(遍照, 변조)라는 사람에게 지어준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노래 1100수를 모아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을 편찬하도록 명한 다이고(醍醐) 일왕, 미나모토노 아츠히토(源 敦仁) - 출처 : wikipedia

    그 내용을 추측하자면 자비롭고 겸손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을 높이 기리고 칭찬하는 편지 형식의 글귀입니다.

    당시 한반도 도래인으로 추측되는 일본 왕족과 일부 귀족들은 일상 언어에 삼한 민족들의 언어를 섞어 사용했으리라 추측되며, 고대 한국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이두, 향찰을 옮겨 쓰라고 명령받은 헤이안 인들은 고대 일본어를 사용해 말이 서로 달랐던 탓에, 한자로 쓰여진 이 노래를 일본식 언어로 임의로 발음을 기록하는 바람에 그 뜻과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국의 한자로 쓴 한국어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었으니 그 의미가 굉장히 중첩되고 오리무중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자로 된 향가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和可幾美波 千與仁末之末世 左々礼以之乃 以者 本止奈利 天己个能武寸万 天
    화가기미파 천여인말지말세 좌좌례이지내 이자 본지내리 천기개능무촌만 천

    '々'는 발음이 없으며 바로 앞의 글자를 반복하는 반복 부호 입니다.

    한반도에서 천년 넘게 불려진 전통적인 노래 형식, 향가(鄕歌, 혹은 향찰)의 특징은 문장 앞부분은 한자의 뜻을 차용하고, 문장 뒷부분은 한자의 음을 차용해 썼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두와 향찰의 경우 뜻과 발음이 이중으로 존재하도록 배치한 경우가 많아 그 의미가 심오합니다.

    내 맘대로 번역해 본 향가

    다음은 제가 한자 의미와 한국어, 일본어 발음을 마구 섞어 의역한 내용입니다.

    논문을 이따위로 썼다간 당연히 반려되겠지만, 이건 제 블로그니 제껍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차는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팔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보도국은 제껍니다. 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이 회사 수도꼭지는 제 껍니다. 제 마음대로 잠글 수 있는 겁니다!!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로비는 이제부터 제겁니다.
    회사에서 타시면 안 됩니다!!

    和可幾美波 / 화가기미파
    일본어 발음으로 와가키미와 = (내가 아끼는) 나의 그대는
    한자의 뜻으로 = 비단같은 아름다움이 널리 퍼져 화합이 가능했던 것은
    千與仁末之末世 / 천여인말지말세
    천명(1,000명) 중에서도 가장 어질어 세상 끝에서 끝까지
    左々礼以之乃 / 좌좌례이지내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어 예를 다할지니
    以者 / 이자
    이 사람은 (이 자는)
    (혹은 한반도 남부에서 사용하는 '이제, 지금'의 사투리 '이쟈, 인쟈, 은쟈')
    本止奈利 / 본지내리
    본분을 지켰으니(~되다, 일본어 접미사 나리, なり)
    天己个能武寸万 / 천기개능무촌만
    하늘(일왕 본인, 혹은 하나님)이 능히 그의 자손을 만대까지 보호하리라
    天 / 천
    하늘(이 쓰노라, 편지에서 마지막에 서명을 날인하는 것과 같이)

    요약하자면, '내가 아끼는, 아주 겸손하고 인자한 그대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퍼져 본보기가 되었으니 전지전능한 신이자 하느님인 내가 그대를 축복하고 보호하리라'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가 되는대로 막 해석한 것이니 당연히 근본없는 해석입니다!)

    이것을 헤이안 사람들이 고대 일본어로 해석해 적은 것이 다음 문장입니다.

    기미가요(君が代) 뜻과 가사
기미가요의 원본과 유래
    기미가요가 처음으로 등장한 고금 와카집 7권, 343번과 344번 노래를 필사한 '근절, 통절' 점엽장모본'('筋切, 通切' 粘葉装模本). 제343번 노래는 신라시대 향가 형식으로 지어진 시로, 한자로 된 원문을 읽기 위해 고대 일본어 발음으로 번역해 표기한 것이다. 이 문장은 이후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의 모티브가 되었다. - 출처 : hakubi-koubou

     

    わがきみは 千よにましませ さざれいし 、いはほとなりて こけのむすまで
    와가키미하 치요니마시마세 사자레이시 , 이하호토나리테 코케노무스마데
    내 맘대로 의역 = (내가 아끼는) 그대는 천대에 이르도록(~되었습니다, 마시) 마치(마세) 보석과도 같구나(~로구나, 노), 이하(이제) (돌)부처(ほとけ의 줄임말 호토)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번창하리라)

    요약하자면 '그대는 천대에 이르도록 보석과도 같지 않은가, 이후 부처가 되어서 이끼가 낄 때까지(그 명성이 전해지리라)' 정도의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와가키미'라는 표현은 현대어로 '(나의)그대여'와 비슷한 느낌으로 번역되며, 상대방을 존중하며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치요니 마시'는 '천대에 이를 정도로 (자손이 번창하였으니)'로 의역했습니다.

    '마시'는 제주도 방언으로 '~입니다.' 라는 높임말 어미입니다.

    중세 한국어의 원형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제주도 사투리에서 문장의 끝에 '~게 마시'를 붙이면 존중의 의미를 담은 높임말이 됩니다.

    '마세'는 한국어 '마치'로 의역하였고, '사자레이시'는 일본인들도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말이라 현대 일본어에서는 조약돌로 번역하지만, 글귀의 문맥 상 귀한 신분의 상대방을 존중하고 치하하기 위해 귀한 물건에 빗대어 표현한 구절이기에 존귀한 것을 이르는 것이라 유추하여 '보석'이라 의역하였습니다.

    '이하호'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며, 저는 이 부분을 조금 다르게 끊어 읽어보았습니다.

    '이하호 토 나리테'가 아니라 '이하 호토 나리테'로 끊어 읽으면 '이하'는 시간적으로 '이후'를 뜻하는 한국어 한자발음 '이하'와 같다 여겨, '이제'로 의역하였습니다.

    부처님을 뜻하는 한자 불(仏, 부처 불佛 자의 간체자)자는 일본어 훈독으로 호토케(ほとけ)라고 읽으며, 이중 앞의 두 발음으로 줄여 '호토'라고 발음한 것이라 유추해 의역하였습니다.

    이 노래 내용은 헤이안 시대에 사용된 고대 일본어이기 때문에 현대 일본 사람들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발음을 토대로 뜻을 유추하여 현대 일본어에 맞추어 가사를 개사하여 번안한 것이 다음 내용입니다.

    君が代は千代に八千代にさざれ石の巌(いはほ)となりて苔のむすまで
    키미가요와 치요니 야치요니 사자레 이시노 이와오(이하호)토 나리테 코케노 무스마데
    그대의 시대는 천대에 8천대에 조약돌의 바위(이하호)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변경사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첫 부분, '나의 그대여'와 같이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형 대명사인 '와가키미(わがきみ)'가 '임(군주, 임금 君)의 시대'를 뜻하는 '키미가요(君が代)'로 그 의미와 발음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또한 일본인들도 '이하호'라는 말을 번역하지 못해 '이와오'라는 발음의 바위 암()자로 변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어 노래 발음을 한자 뜻, 차음 병행 표기방식으로 써서, 그것을 다시 고대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천년을 지나고 나니 누구도 그 뜻을 알 수 없는 기묘한 문장이 되어,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문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이후 일본의 국가, 키미가요로 변하게 됩니다.

    현 일본 국가, 기미가요 가사

    키미가요는 1888년 일본의 국가로 지정되었다가 일제 패망 이후 공식적으로 국가의 지위를 박탈당해 국가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가를 연주해야 할 상황에는 항상 이 노래가 불려왔으며,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国旗及び国歌に関する法律)'이 새롭게 제정되면서 다시 국가의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한글 자막] 君が代 (기미가요, 일본의 국가) 공부하는 남자
    君(きみ)が代(よ)は
    키미가요와
    임의 시대는

    千代(ちよ)に八千代(やちよ)に

    치요니 야치요니
    천 대에 팔천 대에

    さざれ石(いし)の

    사자레 이시노
    조약돌이

    いわおとなりて
    이와오토 나리테
    바위가 되어서

    苔こけのむすまで
    코케노 무스마데
    이끼가 낄 때까지

    가사의 내용은 일왕의 후손이 오래도록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왜 이 노래는 전범가라고 불리우는 것일까요?

    왜 이 노래를 부르면 안되는 것일까요?

    구 일본제국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군가, 기미가요 행진곡

    이 노래를 편곡, 개사하여 만든 노래가 있습니다.

    구 일본 제국군이 군가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키미가요 행진곡(君が代行進曲)이라는 노래인데, 완전히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곡으로 끔찍한 학살과 가혹한 수탈, 심지어 자살 공격으로 여겨지는 카미카제 특공대의 무지성 꼬라박 공격마저도 정당화하는, 그야말로 죽음을 찬미하는 곡입니다.

    당연히 현대 일본에서 이 노래를 공식적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는 기악곡으로는 현재까지도 자주(!) 연주되는 곡입니다.

    특히 방위성 산하 자위대 군악대에서 이것을 공식, 비공식 행사에서 자주 연주하기 때문에 현대 일본이 평화헌법을 수호하며 스스로를 방위하기 위한 자위권만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한들 여전히 제국주의, 군국주의 침략 야욕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입으로 소리내어 부르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국제 사회 어디에서도 굉장히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유튜브에서도 누군가가 육성으로 부른 버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굳이 노래를 첨부해 조회수를 올려줘야되나 싶지만 얼마나 재수없고 지독한 내용인지 알아야 욕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조음성으로 부른 노래를 첨부합니다.

    혹시라도 귀에 익어버려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다 누군가에게 키미가요를 불렀다는 사실을 들키게 되면 매국노로 낙인찍혀 평생 두고두고 욕을 먹을 수도 있으니 너무 반복해서 듣지는 마시기를 권장합니다.

    【軍歌】君が代行進曲【NEUTRINO-AIきりたん】Japanese Military Song never give in!
    1절
    君が代は
    키미가요와
    임의 대는
    千代に八千代に
    치요니 야치요니
    천대 팔천대에
    細れ石の
    사자레 이시노
    작은 조약돌이
    岩となりて
    이와오토 나리테
    바위가 되어서
    苔の生す迄
    코케노 무스마데
    이끼가 낄 때까지

    2절
    来たれや来たれやいざ来たれ
    키타레야 키타레야 이자 키타레
    오거라 오거라 자아, 오거라
    皇国を守れや諸共に
    미쿠니오 마모레야 모로토모니
    황국을 지켜라 모두 함께
    寄せ来る敵は多くとも
    요세쿠루 테키와 오오쿠토모
    몰려오는 적은 많을지라도
    恐るゝ勿れ怖るゝな
    오소루루 나카레 오소루루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두려워 마라
    死すとも退く事勿れ
    시스토모 시리조쿠 코토나카레

    죽더라도 물러서는 일 없으라
    皇国の為なり君の為
    미쿠니노 타메나리 키미노 타메

    황국을 위해서이자 임을 위하여

    3절
    君が代は
    키미가요와
    임의 대는
    千尋の底の
    치히로노 소꼬노
    수많은 밑바닥의
    細れ石の
    사자레 이시노
    작은 조약돌의
    鵜のゐる磯と
    우노 이루 이소토
    가마우지가 갯가에
    現るゝ迄
    아라와루루 마데
    나타날 때 까지

    발음을 쓰고 번역하면서도 역겹네요.

    가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희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은 갯가에 널린 조약돌에 불과하며, 오로지 중요한 일왕과 국가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죽으라'는 뜻입니다.

    헤이안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노래의 가삿말과는 완전히 다르고, 2절 이후로는 현대어로 번안된 일본 국가 키미가요와도 그 뜻이 완전히 다르며, 오히려 조약돌과 임(君, 키미)와의 관계를 정반대로 해석해 그 뜻을 완전히 망쳐 놓았습니다.

    원곡에서는 조약돌이 쌓이고 뭉쳐 큰 바위를 이룰 정도로 오랜 기간 왕의 치세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단순한 가사이지만, 군가로 개사된 기미가요 행진곡 안에서는 좋은 뜻으로 지어졌던 1절 조차 왕 단 한명을 위해 전국민이 목숨을 바쳐야하는 정신나간 군국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2절의 포석으로 활용될 뿐입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도 항상 선전포고 없는 기습 선제공격으로 침략을 선행한 것은 일본제국 쪽인데, 몰려오는 적들을 막아내라는 비장한 표현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현대 일본을 포함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공식 석상에서 부르는 것이 금지된 곡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죽는 것은 소수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끌려나가 끔찍한 전장에서 처참하게 죽게 될 국민들이, 빨리 전쟁터로 나가 왕과 국가를 위해 죽으라는 내용의 이런 노래를 찬양하며 자랑스럽게 불러대는 것은 그야말로 부끄러움이라고는 없는 무식한 행위입니다.

    안그래도 원곡이 종결음이 아닌 레로 끝나 미완성인 곡처럼 기분나쁘고 분위기가 우중충하여 장송곡 같은 노래에 자발적인 죽음을 강요하는 가사를 붙여 진짜 장송곡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일제시대, 일왕 찬양과 식민화 정책을 강요하기 위해 강제로 부르게 했던 기미가요

    과거 일제시대를 직접 겪은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 소학교에서 이 기미가요를 강제로 기립하여 부르게 했기 때문에 가사를 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자기들끼리만 불렀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한민족, 조선인들을 일본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위해 하루에 1번 이상, 또 각종 모임이나 학교 조회시간 때 일장기 게양과 경례 뒤에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일제시대 1942년, 군사훈련을 받는 통영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우리 학교 모습, 경남일보
    일제시대 1942년, 군사훈련을 받는 통영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우리 학교 모습, 경남일보
    태평양전쟁 미화 수업 중인 창원 성호 소학교(초등학교), 칠판 맨 왼쪽의 가장 큰 글씨는 대동아전쟁, 대영국, 미국 전쟁이라고 쓰여있다.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우리 학교 모습, 경남일보
    태평양전쟁 미화 수업 중인 창원 성호 소학교(초등학교), 칠판 맨 왼쪽의 가장 큰 글씨는 대동아전쟁, 대영국, 미국 전쟁이라고 쓰여있다.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우리 학교 모습, 경남일보

    하지만 일제 패망 이후 이 노래는 전체주의, 군국주의 야욕을 위한 세뇌 노래로 여겨져 공식적으로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었습니다.

    1999년 다시 공식 국가로 제정되었는데, 국가 제정 초기에는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인들의 반대 등으로 일본 내에서도 '이걸 국가로 정해도 괜찮은가' 하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2003년 10월부터 학교행사 때 국기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는 교사에게는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과 죽음을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식민지배, 파시즘 등 광기에 물든 구 일본제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곡이기에, 특히나 가혹한 식민통치의 아픔을 겪은 한민족이라면 더욱, 혹여 그 가사나 음률이 아름답게 느껴지더라도 절대로 따라 불러서는 안되는 노래입니다.

    일본인 중에서도 일부 교사들을 비롯해 충분한 과거사 공부를 통해 역사의식이 깨어있는 지성인들은 이 노래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으며, 국가로 지정되어 제창을 강요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해도 따라 부르지 않습니다.

    日학교 ‘저항國歌’ 유행, '기미가요'를 '종군위안부의 恨' 가사로 영어가사로 발음 흉내 인터넷 통해 급속 확산 - 출처 : 이데일리
    日학교 '저항國歌' 유행, '기미가요'를 '종군위안부의 恨' 가사로 영어가사로 발음 흉내 인터넷 통해 급속 확산 - 출처 : 이데일리

    Kiss Me, girl, your old one
    키스해 주렴, 소녀여, 할머니에게
    Till you' re near, it is years till you re near
    네가 내 옆에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니?
    Sounds of the dead will she know?
    알아다오,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She wants all told, now retained
    진실이 밝혀지고 마음속에 간직되길 바란다는 걸
    for, cold caves know the moon's seeing the mad and dead
    그래, 차가운 동굴은 알고 있단다. 저 달이, 미쳐 죽어간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전체주의로 인해 사람 개개인의 의지를 말살하고 자살 특공을 아름다운 행위로 미화했던 구 일본제국 군가 행진곡의 근본이 된 노래를 다시금 공식 국가로 제정한 것도 모자라 학생들에게 제창하도록 의무화하는 행태를 보면, 과연 일본이 전쟁과 식민지 수탈의 광기에 미쳐있었던 구 일제의 악습과 사상을 몰아내고 진정 평화로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난 것이 맞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조혜련 기미가요 박수 사건

    기미가요와 관련해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가장 유명한 사건은 개그우먼 조혜련 기미가요 박수 사건입니다.

    2009년 3월 31일 방송된 일본 TBS 방송의 버라이어티쇼 '링컨'에 이종격투기 선수 최홍만 씨와 함께 출연했던 조혜련씨는 방송 도중 일본의 엔카 가수 '야시로 아키(八代亜紀)'가 기미가요를 부르자 웃으며 손뼉을 친 바 있습니다.

    방송화면에서 잡힌 모습에서 함께 출연한 최홍만 씨는 별다른 반응 없이 두 손을 모으고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카메라맨은 유달리 조혜련 씨가 웃으며 박수치는 모습을 길게 잡아 방영하는 음습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물론 조혜련씨는 이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었을 것이고, 그 노래가 기미가요라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며, 기미가요가 가진 추악한 역사적 의미도 몰랐을 수 있습니다.

    기미가요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겠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어야 '이게 기미가요구나' 라고 인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 노래가 기미가요라는 것을 알았다면 조혜련 씨는 웃지도, 박수를 치지도 않았겠지요.

    하지만 구 일본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노래나 마찬가지인 기미가요가 나오는 도중, 박수를 치고 환하게 웃는 '한국인'의 모습은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방송 연예 문화 선진국이었던 일본에 정착하기 위해 오랫동안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해 온 조혜련 씨는 이 사건으로 국내 민심이 바닥을 쳐 매국노로 매도되었고,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는 루머까지 더해지며 오락 방송에서 개그삼아 했던 몇몇 언행까지도 싸잡아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한 매국행위로 간주되어 인터넷에서 온갖 욕이란 욕을 다 먹고 방송가에서 퇴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조혜련 씨는 이 사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기미가요를 따라불렀다는 것은 오해임을 호소한 끝에 다시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기미가요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한국인들에게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입니다.

    '매국노 오해'조혜련, 과연 무슨 사건이길래?! MBN News

    JTBC 비정상회담 방송에서도 두 번이나 사용되었던 기미가요

    대한민국 사람이 어딘가에서 기미가요를 들을 일 자체가 잘 없기 때문에, 놀랍게도 방송가에서 의식없이 일본의 국가인 줄로만 알고 이를 방송 배경음악으로 까는 부적절한 행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2014년 10월 27일 JTBC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17회에서 일본인 패널이 등장할 때 기미가요를 송출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되자 네티즌들은 이전 회차에는 같은 실수가 없었는지 찾아보았고, 비정상회담 1회차에서도 기미가요가 방송된 사실을 찾아내 아연실색 하였습니다.

    JTBC 비정상회담 방송에서도 두 번이나 사용되었던 기미가요
    비정상회담 제작진의 공식 사과문

    비정상회담 제작진은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이 사건은 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되어 결국 중징계로 이어졌습니다.

    '기미가요' 내보낸 JTBC '비정상회담', 결국 중징계
     

    '기미가요' 내보낸 JTBC '비정상회담', 결국 중징계 - 미디어오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박효종 위원장)가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배경음악으로 틀어 논란을 빚었던 JTBC 에 대해 중징계(법정제재) 결정을 내렸다. JTBC는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를 보도하면서 ‘

    www.mediatoday.co.kr

    공식적으로는 일본 영토이지만 실제로는 식민지배를 당하는 비국민, 오키나와인들

    한, 중, 일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가 전통적으로 일본의 영토였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전통적으로 류큐(琉球) 왕국이라는 독자적인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는 별개의 국가였습니다.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유리 류(瑠), 공 구(球)를 사용해 '유리 구슬' 이라는 뜻이 되며, 류큐어로 발음하면 '루추'이고, 우리말로 읽으면 '유구, 류구' 입니다.

    류큐 왕국의 국기류큐 왕국의 위치
    류큐 왕국의 국기와 위치 - 출처 : 나무위키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류큐 왕국의 슈리성과 내부. 중국 명나라와의 무역이 주된 국가 기간산업이었기에 대륙 남방의 문화와 언어가 많이 융합되었다. - 출처 : 뉴스톱&amp;#44; 나무위키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류큐 왕국의 슈리성과 내부. 중국 명나라와의 무역이 주된 국가 기간산업이었기에 대륙 남방의 문화와 언어가 많이 융합되었다. - 출처 : 뉴스톱&amp;#44; 나무위키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류큐 왕국의 슈리성과 내부. 중국 명나라와의 무역이 주된 국가 기간산업이었기에 대륙 남방의 문화와 언어가 많이 융합되었다. - 출처 : 뉴스톱, 나무위키
    그러나 국보 슈리성은 2019년 10월 31일 안타까운 화재 사고로 중심 건물인 정전이 전소되어버렸고&amp;#44; 현재 복원작업중이다. - 출처 : 이로운넷&amp;#44; 한국일보그러나 국보 슈리성은 2019년 10월 31일 안타까운 화재 사고로 중심 건물인 정전이 전소되어버렸고&amp;#44; 현재 복원작업중이다. - 출처 : 이로운넷&amp;#44; 한국일보
    그러나 국보 슈리성은 2019년 10월 31일 안타까운 화재 사고로 중심 건물인 정전이 전소되어버렸고, 현재 복원작업중이다. - 출처 : 이로운넷, 한국일보
    또 혐한...&quot;日 슈리성 화재는 한국인 방화&quot; 유언비어 확산 : 출처 - 동아일보
    또 혐한..."日 슈리성 화재는 한국인 방화" 유언비어 확산 : 출처 - 동아일보

    류큐의 문화, 언어, 관습은 중화 대륙의 남방부인 푸젠성(福建省, 복건성), 저장성(浙江省, 절강성), 대만(臺灣, 타이완) 섬의 영향을 받아 일본보다는 오히려 중국과 비슷하다고 여겨졌으며, 특히 류큐 왕조의 왕족 및 귀족 등 지도층의 일부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한민족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획] 오키나와 류큐국의 출현, 삼별초는 역사 속으로
     

    [기획] 오키나와 류큐국의 출현, 삼별초는 역사 속으로 - 인천투데이

    인천투데이=이보렴 기자│삼별초는 제주도에서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삼별초가 고려와 류큐(琉球)의 관계를 설명하는 주제로 등장했다.오키나와의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癸酉年高

    www.incheontoday.com

    "유구국(오키나와)은 삼별초가 세웠다"
     

    "유구국(오키나와)은 삼별초가 세웠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유구국(류큐왕국)은 현재 오키나와로 불리우고 있으며, 지금은 일본 영토로서 우리에게는 휴양지, 미군 기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단 오키나와라고 하면 섬 하나만 가리키는 줄 아는 사람이 많

    www.incheonin.com

    류큐는 한반도의 조선과 똑같이 일본 제국에 의해 강압적으로 병탄되어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 관습을 잃은 식민지입니다.

    식민지에도 등급이 있었는데, 류큐는 가혹하고 지독한 식민지 탄압 정책으로 큰 반발을 샀던 조선보다도 더욱 낮은 계층으로 취급받아 가축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절대로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는 류큐인들, 제창 시 웃거나 박수도 치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의 영토이자 태평양 함대의 수많은 미군 함정들이 정박된 모항, 미 해군기지가 위치했던 하와이 주 오아후 섬의 진주만(眞珠灣, Pearl Harbor)을 선전포고 없는 기습 선제공격으로 폭격하면서 태평양 전쟁(Pacific War, Asia–Pacific War, AP war)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의 공세를 감당하지 못한 일본 제국군은 결국 미군의 상륙을 허용하고 마는데, 왕이 기거하는 일본 본토를 필사적으로 사수하려 한 것과 달리 의도적으로 오키나와에 미군을 유도합니다.

    이곳에서 펼쳐진 상륙작전과 육상전에서 양측은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와 손실을 입었고, 뜬금없이 전장으로 선택되어 일본과 미국 간 전쟁의 포화를 대신 맞아야 했던 류큐인들은 일본군에 의해 집단 자살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정의 통치 하에서 잠깐의 평화를 누렸던 류큐 열도 섬들은 1972년까지 일본에 차례차례 반환되어 결국 일본의 영토가 되었지만,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류큐인들을 미군에 협력한 배신자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감히 일왕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비국민(非國民, ひこくみん, 국민의 자격이 없는 자)이라 부르며 멸시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완전히 일본의 영토로 편입이 이루어진지 50년 이상,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오키나와인들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어떤 지역에 대한 국가적 따돌림,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북아시아 남중국해 해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치&amp;#44; 오키나와 섬의 미군기지 배치도 - 출처 : 서울신문&amp;#44; 한겨레동북아시아 남중국해 해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치&amp;#44; 오키나와 섬의 미군기지 배치도 - 출처 : 서울신문&amp;#44; 한겨레
    동북아시아 남중국해 해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치, 오키나와 섬의 미군기지 배치도 - 출처 : 서울신문, 한겨레

    당연히 류큐인들은 일본에서 국가로 지정된 기미가요도 제창하지 않으며, 애초에 학교에서 가르치지를 않기 때문에 가사도 잘 모릅니다.

    국가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노래의 음은 알 지언정, 따라 불러서는 안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추악한 유산임을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류큐인들에게 기미가요란, 단지 자신들을 식민통치하고 몰살하려고 했던 못 돼 쳐먹은 국가에서 자기들끼리 좋아하며 부르는 노래일 뿐인 것입니다.

    절대로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는 류큐인들, 제창 시 웃거나 박수도 치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흔히 돌아다니는 짤방,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는 류큐 열도 출신 연예인들

    영국 내의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사람들이 스스로를 잉글랜드와 다른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고 여기며 구분하는 것과 같이, 현재까지도 류큐 사람들은 스스로를 오키나와인이 아니라 류큐인이라고 부르며 자주국으로 독립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기미가요' 안 부르는 일본 사람들...공통점은 '이것'?|크랩 크랩 KLAB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섬 일본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가진 해상왕국 오키나와(류큐왕국)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 썰, 키미가요 김해김씨 찬양가 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있어 아래에 전문을 퍼옵니다.

    학술적으로는 별로 가치가 없는 국뽕 괴담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대표하는 노래라고 주장하는 키미가요의 유래와 근거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는 글이기에 재미로 읽어볼만한 글입니다.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의 애국가라고 알고 있는 '기미가요'

    이 노래는 최소한 1,200년 전부터 불리던 노래인데 제목도 없고, 단지 첫 구절이 키미가요(KIMIGAYO)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냥 KIMIGAYO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의 애국가라고 알고 있는 '기미가요'

    이 노래는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이라는 고대 일본의 노래 책 속에 전하는데, 만엽집(萬葉集)이 일본을 건국(建國)한 세력들이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불렀던 자기들의 노래를 모은 책이라면,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은 일본에 도착한 후 최초로 불렀던 자기들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엽집(萬葉集)은 일본어로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만엽집(萬葉集)이 열도에 도착하기 전 그들이 불렀던 1세대 노래,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은 열도에 도착한 후 일본 건국세력들이 최초로 불렀던 자기들의 2세대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도대체 키미(KIMI)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카더라 썰, 키미가요 김해김씨 찬양가 설

    키미(KIMI)는 일본에서 임금 군(君)으로 적는데, 이 사진처럼 일본인들은 자기 개를 부를 때에도 키미(君)를 갖다 붙인다.

    키미(KIMI)는 일본인들의 일상 회화에서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 혹은 친구를 부를 때 사용된다.

    키미(KIMI)가 다스리는 세상이 천년 만년 계속되어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고 이끼가 낄 때까지 영원히 계속되어라~

    키미가요(KIMIGAYO)의 가사는 대충 이런 뜻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인들이 친구나 아랫사람을 부를 때 쓰는 키미(KIMI)라는 말로, 하늘에서 온 신(神)이라고 그들이 말하는 천황을 노래하는 것이?

    구 일본 제국시대 군복을 입고 있는 일본인들
    구 일본 제국시대 군복을 입고 있는 일본인들

    이 사진속의 인물들처럼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일본인들이 키미(KIMI)를 위해 싸우다 죽어갔는데, 물론 그들도 키미가요(KIMIGAYO)를 부르며 죽어갔겠지?
    그들이 싸운 목적의 키미(KIMI)가 과연 누구일까?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키미가요(KIMIGAYO)의 키미(KIMI)는 일본인들이 흔히 대화에서 사용하는 그런 키미(KIMI)가 아니라는 것을.
    즉, 키미가요(KIMIGAYO)의 키미(KIMI)는 이인칭 대명사가 아니고, 어떤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를 의미한다.
    일본의 백과사전을 뒤져보면, 일본 학자들은 키미(KIMI)라는 단어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1. 헤이안(Heiyan)시대에 일본의 부인들이 자기의 남편을 키미(KIMI)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키미(KIMI)라는 단어가 시작되었다는 설(說)
    2. 헤이안(Heiyan)시대에 어떤 귀족이 자신의 수하(手下)를 키미(KIMI)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키미(KIMI)라는 단어가 시작되었다는 설(說)

    과연 이것이 진실일까?
    결론을 말하면, 일본 학자들의 이런 설명은 '친구나 수하(手下)'를 의미하는 키미(KIMI)의 유래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진실은 일본학자들은 (알고 있어도)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것은 일본의 지식인들이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내용이다.
    일본학자들의 이런 설명이 키미(KIMI)의 전부라면, 헤이안(Heiyan)시대의 일본은 천황을 호칭하는 말로 자기 남편이나 수하(手下)를 불렀다는 아주 이상한 나라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키미가요(KIMIGAYO)는 헤이안(Heiyan)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으므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일본인들은 다시 일본백과사전으로 카바네(KABANE)라는 단어를 검색해보기 바란다.
    그러면, 고대 Yamato의 지배계급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나타난다.
    고대 Yamato의 지배계급은 신족(神族)=왕족(王族)과 신족(臣族)으로 구분되는데,
    왕족(王族)은 모두 성씨(姓氏)가 키미(KIMI)이다.
    왕족(王族)들을 모두 키미(KIMI)라고 했고, 그중 대왕을 오오키미(OUKIMI = 大KIMI)라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키미가요(KIMIGAYO)의 키미(KIMI)는 이 키미(KIMI)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를 의미한다.
    즉, 키미씨(KIMI氏)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천년만년 계속 되기를 소망하는 노래이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 족보(族譜)
    김해 김씨(金海 金氏) 족보(族譜)

    그럼 고대 야마토(Yamato)를 건국하고 지배한 이 키미씨(KIMI氏)는 누구인가?
    그것을 설명하기 앞서, 과거에 한국이 근대화가 지체되었던 시기에 약 30여년 간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1915년 6월 29일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총독부 경무령(警務令)'에 의해 한국의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족보발간(族譜發刊)을 금지하는, 매우 수상한 경무령(警務令)을 발동했다.
    한국에는 金씨의 종류가 365 가지인데, 왜 유독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족보만 발행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김씨(金海 金氏)의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路王) 표준 영정
    김씨(金海 金氏)의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路王) 표준 영정

    위 사진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시조(始祖)인 김수로(金首路)인데, 그에게는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가 있었다.
    첫째 아들에게는 왕권(王權)을 물려 주고,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외가(外家), 김해 허씨(金海 許氏) 시조(始祖)의 권력을 물려주었다.
    그러나 나머지 7명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한국의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이 없다.
    하지만 한국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한국인 누구도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문제가 된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족보(族譜)에 이런 내용이 전해진다.
    비관세태(悲觀世態), 승운이거(承雲而去) =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비관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
    즉, 일곱 명의 왕자는 아무 것도 물려받지 못한 것을 매우 비관하여, 구름을 타고 떠나 갔다 라는 내용이다.
    그럼 이것이 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위험한 서적으로 분류되어 발간이 금지된 것일까?

    일본서기(日本書記)나 고사기(古事記)를 보면, 일본 건국의 시초는 일곱 명의 왕자가 구름에서 내려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일본서기(日本書記)나 고사기(古事記)를 보면, 일본 건국의 시초는 일곱 명의 왕자가 구름에서 내려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들이 내려오는 장소는 쿠지후루(Kuji-huru)이다.
    그리고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탄생 장소는 구지봉(Kuji-bong)이다.
    일본 건국신화에서 신라(新羅)의 소시모리(曾尸茂梨, Soshi-mori)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건국신화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손(天孫)을 맞이하는 지상(地上)의 제관(祭官)은 9명이다.
    가야 건국신화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손(天孫)을 맞이하는 지상(地上)의 제관(祭官) 또한 9명이다.
    이러한 모든 내용은 한국인의 주장이 아니라 일본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일본의 건국 주체가 가야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 波夫, Egami Namio) 교수
    일본의 역사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 波夫, Egami Namio) 교수

    역사학자 에가미 나미오(江上 波夫)는 일본 출신 중 세계 역사학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권위자이다.

    아직 그의 이론을 반박하는 어떤 학자도 일본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1990년에 지진으로 인해 가야의 거대한 고분군(群)이 지상으로 나타났을 때, 발굴 현장을 지켜본 뒤 이런 말을 남겼다.
    "가야의 고분이 고대 일본의 고분과 너무 동일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럼 이제 키미가요(KIMIGAYO)의 키미씨(KIMI氏)가 누구인지 일본인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의심된다면 일본백과사전에서 카바네(KABANE)를 다시 자세히 읽어보기 바란다.
    일본학자들이 설명하기를 고대 야마토(YAMATO)의 지배계급제도는 신라의 골품(骨品)제도와 유사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키미씨(KIMI氏)는 왕족의 신분으로 최상위 계층을 구성했고, 그 아래 오미씨(OMI氏), 무라지씨(MURAJI氏) 등이 위치하는 것이다.
    결론은, 키미가요(KIMIGAYO)의 키미(KIMI)는 한국의 김해 김씨(金海 KIM氏)를 말한다.
    고대 야마토(YAMATO)의 지배계급의 구조 역시 한국의 골품제도(骨品制度)와 유사했을 것으로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한국의 김(KIM)을 고대 일본에서 키미(KIMI)로 발음한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hanryulove - 한류열풍사랑 카페

    일본 국가 '기미가요'(君が世)는 "김씨(가야)의 세상" 이라는 뜻

    [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 28] 기미와 보쿠(君と僕)
    2009.07.18. 10:10

    우리는 윗사람에게 자기를 겸손하게 말할 때는 '저'라고 하고, 자기와 동격이거나 아랫사람에게는 '나'라고 한다.
    일본말도 우리와 같아서 '나'를 윗사람에게는 '와타쿠시'(私), 동격이거나 아랫사람에게는 '보쿠'(僕)라고 한다.
    또 상대를 지칭할 때 쓰는 '너'라는 말은, 상대가 자기와 같거나 또는 낮을 때만 사용해야지 윗사람에게 쓰면 대단히 실례가 되는 말이다.
    일본말에서도 이와 똑같은 용법의 '너'를 '기미'(君)라고 하는데, 이는 '김'(金)이 변해서 된 말이다.

    그리고 '나'라는 '보쿠'(僕) 역시 '박'(朴)이 변해서 된 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김'과 '박'이 '기미'와 '보쿠'라는 말로 바뀌었을까?
    여기에는 엄청난 역사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지금부터 1천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경상도에 '가야'라는 6개의 소국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연합하여 '가야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 가야 연맹체의 종주국인 대가야는 지금의 고령(高靈)지방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국명을 '미오야마국'(彌烏耶馬國)이라 하였고, '박'(朴)씨가 왕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김해(金海)지방에는 금관가야가 있었는데, 국명을 '구야국'(狗耶國)이라 하고 '김'(金)씨가 왕이었다.

    그런데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가 신라가 세력을 점점 확대해 오자, 불안을 느낀 이들의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에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일족들은 오사카 주변의 아츠카에 '야마토국'(耶馬台國)을 건설하였고, 후발의 금관가야는 규슈지방에 '구노국'(狗奴國)을 세우게 된다.
    그런데 세력이 강했던 대가야의 고령 박씨는 박씨라서 보쿠(朴), 상대적으로 약했던 금관가야의 김해김씨는 김씨라서 기미(金)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자연히 세력을 함축한 '나', '너'라는 호칭으로 변한 것이다.
    그 후 흐르는 역사 속에서 야마토국과 구노국은 서로 대립하게 되고, 야마토국의 슈신(崇神) 천황이 구노국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패하고, 그때부터 일본 열도의 패자는 박씨에서 김씨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천황의 성이 '김해 김씨'라는 말도 여기서 나오게 된다.
    이런 역사적인 연유로 '기미'(君)라는 말을 인칭대명사로 쓸 때에는 '자네'라는 뜻의 낮춤말이 되지만, '천황'을 상징하는 '기미'(君)로 쓸 때면 지극히 존엄한 존칭어가 된다.
    일본의 국가를 '기미가요'(君が世)라고 하는데, 이는 '임금님의 세상'이란 뜻이지만, 원래는 '김가네 세상'이란 말이다.

    출처 : [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 28] 기미와 보쿠(君と僕) - 매일신문

    일본 천황은 김해김씨 김수로왕의 후손

    화순타임스 2009/05/02
    일본 천황은 김해김씨 김수로왕의 후손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의 본뜻은 "김씨의 나라"
    일본 천황은 김수로왕의 아들 10명 중 첫째는 거등왕이 되고, 둘은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7명은 아버지와 뜻이 맡지 않는다고 (태양신앙과 구름신앙<김.검.곰>의 차이)하며, 배를 타고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현 가사사노 미사기(鹿兒島縣 笠狹岬)에 도착하여 '여기는 가라(가야)가 보이고 아침에 햇볕이 따스하게 비치니 좋다...'
    고향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여 기뻐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7곰(김. 검. 곰)의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고 하였다. (일본서기. 고사기)
    그들은 약 200년 동안 힘을 키우며, 소왕국을 건설 유지하다가, 동쪽으로 진군 혁명으로 전 일본을 재통일 하게 된다.
    이 혁명을 하면서 일어났던 내용들을, 신화처럼 꾸며서 역사로 만드니 '진무천황 동정기'이다.
    일본 사람들은 BC 660년 ~ AD 420년까지 약 1,000년을 가공하여 역사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그 동안의 가야(가라)는 경북 고령의 우가야(제일 큰집: 종가집)가 약 72~73대 (약 2,000년 동안) 일본 '나라'에서 '박'씨 천황의 나라를 유지하여 왔었으나 결국 김수로왕의 후손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되었던 것이다.
    즉 천황의 성씨가 '박'씨에서 '김'씨로 바뀐 것 이다.
    이것을 역사로 다시 만들고 보니 억지로 '진무천황'이라는 가공인물이 등장하게 되고, 역사도 엿가락처럼 늘려서 만들게 된 것이다.
    일본은 가공을 잘 하고 왜곡을 잘 하기 때문에 일본 역사를 볼 때면 항상 그 뒷면을 잘 볼 줄 알아야 올바르게 파악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천황은 만세 일계라고 하였으니 가짜 천황은 얼마나 많이 만들었을까?
    일본 <고사기>를 완성했을 때가 AD712년 이었는데 이때는 가야계와 신라계가 힘을 쓰고 있었을 때였지만, 천황이 바뀌면서 백제계를 좋아하는 천황과 대신들이 이를 가만두지 않고 다시 일본 역사책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니, AD720년에 <일본서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의 본 뜻은 '천황의 나라... 천황이 다스리는 이세상은....' 라는 뜻인데 즉 '김씨의 나라'라는 뜻이 된다.
    또한 천지 천황과 천무 천황이 밤에 서로 싸우는 곳에서 천지 천황 측의 '암호'가 '기무(김)'였다.

    천무 천황은 외가가 고구려계, 가야계라고 할 수 있고, 이즈모(出雲) 출신 이라고 본다.
    학자들에 따르면 '응신천황(應神天皇 : 오징덴노 : AD420년경)' 때 '하나님이 너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바꾸자고 하며, 바꾸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여, 바닷가에 나가보니 큰 물고기가 대가리가 터져 죽어 있었다.'라는 신화 이야기와 같이 그때가 '박씨 천황'에서 '김씨 천황'으로 바뀌는 시점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를 '진무 천황'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 일본말 : 기미(君) = 김씨 : 일부러 김씨 대신 '군(君)'으로 바꾸었음.
    본래는 아주 친한 친구나, 신분이 낮은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 이었으나, 김수로왕의 후손이 천황이 된 후부터 '김'은 임금 군(君)으로 바뀌었다. (높인 말의 뜻)
    그러니 君이라는 것은 金이라는 뜻이다.
    본래 '君'의 뜻은 '수하', '밑 사람'이란 뜻이었다.
    *** 그러나 일본 국어사전에도 君가네(기미 가네)라는 뜻은

    1. 장래 군주가 될 사람.
    2. 앞으로 그렇게 될 사람의 뜻 접미어.

    이렇게 알기 쉽고 정확하게 천황의 본성이 밝혀졌다.
    ** 필자 /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강동민

    출처 : 일본 천황은 김해김씨 김수로왕의 후손 - 화순뉴스
    전체 출처 :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의 애국가라고 알고 있는 '기미가요' 작성자 jajuwayo 블로그

    비록 과거사 청산을 깨끗이 하지 않았지만 일본은 앞으로도 항상 우리나라의 동쪽에 있을 것이며, 어찌 됐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사촌이자 경제, 군사 공동체입니다.

    경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조금씩 쌓아올려온 우호 관계를 이런식으로 정치 외교 관계에서 기를 쓰고 깨부수려 드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국가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위험하고 두려우며 치욕스러운 악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입니다.

    일본 뉴스에서는 '일왕의 생일 축하연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한국인들이 고작 노래 하나로 발끈한다는 조롱성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고작 그 노래 하나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고 중요한 동맹국이 등을 돌리고 적대관계로 돌아설 수도 있음 또한 분명히 인지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정말 이런 불쾌한 이슈만 아니라면 반일, 혐일 관련 글은 가급적 더이상 쓰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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