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신라 공주와 결혼한 페르시아 왕자.jpg
페르시아 멸망 후 먼 타국 신라까지 찾아온 아브틴 왕자 일행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 이후 사산 제국 44대 샤한샤(شآهَنشآه, 왕중 왕) 야즈데게르드 3세(𐭩𐭦𐭣𐭪𐭥𐭲𐭩) 왕의 명으로 멀리 도망가 세력을 보존하여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명을 받은 아브틴 왕자 일행은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머나먼 망명 생활을 이어갔고, 복잡한 국제 정세를 피해 피난하다 동쪽의 끝 땅 신라에 도착합니다.
이들은 신라를 향할 때 육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당나라 동남부 항구에서 배를 타고 도착했기에 이곳을 섬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처용가비 비문과 노랫말 한자 해석
處容歌碑(𩂫는 곳 처處 자의 이체자)
처용가비
처용의 노래를 새긴 비석
東京明期月良
동경명기월량
서울(서라벌) 밝은 달에
夜入伊游行如可
야입이유행여가
밤 나들이 노니다가
入良沙寑矣見昆
입량사침의견곤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脚烏伊四是良羅
각오이사시량라
다리가 넷이더라.
二肹隱吾下於叱古
이힐은오하어질고
두 개는 내 것이지만,
二肹隱誰文下焉古
이힐은수문하언고
두 개는 누구 것인가?
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의오하시여마어은
본디 내 것이지마는,
奪叱良乙何如爲理古
탈질량을하여위리고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처용가는 신라 제 49대 임금 헌강왕(憲康王, 875년 ~ 886년) 김정(金晸)의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노래입니다.
문장의 앞부분은 한자어를 뜻으로 사용하고, 문장 끝부분과 한자 단어 사이를 우리말 가차음자를 넣어 만든 8구체 향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지금의 울산)에 나가 놀다가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었다.
왕이 괴이히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주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라 했다.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원에게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명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으므로 이에 그곳 이름을 개운포라 했다.
동해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여 춤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의 이름이 처용이다.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아내로 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 두려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그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
그 때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범하였는데도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지금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651년 멸망하였고,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이 신라에 도달한 것은 처용가가 지어지기 약 200년 전인 무열왕(武烈王, 654년 ~ 661년) 혹은 문무왕(文武王, 661년 ~ 681년) 시기로 추정되기에, 처용의 이야기는 외모가 특이하고 기품있었던 페르시아인들의 이야기가 약 200년간 이어져 내려와 구전 설화처럼 남아서 노랫말로 재구성되어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브틴의 이야기가 사실일 경우 그는 망국(亡國)의 왕자(王子)라는 신분으로 신라에 손님으로 와서 신라 공주와 결혼까지 한 인물입니다.
처용가에서 처럼 누군가 감히 왕족인 공주를 범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아내가 누군가와 동침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도 차마 직접 제지하지 못하고 노래를 불러 서러움을 달래는 처용의 소극적인 모습은 비록 왕에게는 환대받았지만 신라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던 먼 타국의 왕자 아브틴이 처했던 상황과 울분을 마음대로 터뜨릴 수 없었던 심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합니다.
전통적으로 귀신과 액운을 쫓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을 들이기 위해 붙인 부적, 처용의 그림 이미지
کوش نامه (쿠시나메)
중세 이란의 서사시로
쿠시는 사람 이름이고
나메는 책, 서사시란 뜻이므로
쿠시의 서사시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란의 전래동화, 쿠시나메의 기록
아랍에 의해 멸망한 페르시아 왕자가
정의로운 조력자 신라왕을 만나
셋째 공주와 결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페레이둔이다.
페르시아를 다시 되찾아줄 영웅으로 기록됨.
이 이야기에는 실제 모티브가 있으며
국내에선 이 왕자가
처용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이와 비슷한 이름으로
일본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쿠시나다히메
(고사기: 櫛名田比売, 일본서기: 奇稲田姫
둘 다 8세기 710년대 이후에 쓰여졌다.)
라는 전설 속의 여신이 있다.
일본은 당시 가야와 신라, 백제에서 구전된
설화나 신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자신들만의 신화를 만들었다.
KBS 파노라마 신라에 온 페르시아 왕자 쿠쉬나메 원본 영상
KBS 파노라마 – 쿠쉬나메 1부, 신라에 온 페르시아 왕자 / KBS 20130517 방송 KBS역사저널 그날
KBS 파노라마 – 쿠쉬나메 2부, 페르시아인들의 파라다이스 신라 / KBS 20130517 방송 KBS역사저널 그날
저 시기는 언제인가? 신라 왕 태이후르는 누구인가?
페르시아, 이란의 역사 속 영웅왕 페레이둔의 탄생 설화는 페르시아 왕자들의 교과서, 샤나메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651년 멸망하였습니다.
따라서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자 아브틴이 신라에 도착한 것은 651년 이후의 시기일 것입니다.
페르시아어 단어들은 구글 번역기에서 발음도 지원해주지 않고, 검색을 해도 유의미한 검색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란이라는 나라가 그만큼 인터넷 세계에서 고립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샤나메 (شاهنامه, Shahnameh)
- 쿠쉬나메 (کوش نامه, Kushnameh)
- 신라 (شنیله, Shinileh)
- 왕 (شاه, Shāh)
- 테이후르 (تاهور, Teyhur)
-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 (آبتین, Abtin)
- 신라 공주 파라랑 (فَرانَک, Farārang 혹은 파라낙 Farānak) - '작은 나비'라는 뜻의 파라낙(Parvânak)과 발음이 같다.
- 아브틴과 파라랑의 아들이자 훗날 페르시아의 왕이 되는 페레이둔 (فریدون, Fereydun 혹은 페리둔, 파리둔 Faridun)
페르시아 왕자의 교과서, 샤나메 - 이란의 역사와 신화
세계 각국의 곡창지대들.jpg
2024.03.12 - [생활 정보] - [펌] 네 번은 권유해야 하는 이란의 독특한 거절 문화 터로프(tãrof)
'생활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명하고 충격적인 몇몇 야구 움짤들.gif (88) | 2024.06.11 |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존심을 건드려 질투를 유발한 작품.jpg (59) | 2024.06.10 |
여학교와 남학교 선생님의 차이.jpg (50) | 2024.06.08 |
멋진 명문 '절대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지마라' (45) | 2024.06.07 |
레딧에서 화제가 되었던 '소 고구려' 논쟁.jpg (69) | 2024.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