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멍텅구리들의 대화

술 취한 멍텅구리들의 대화

나도 이 대화가 실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친구A : 야, '백신'이라는 단어의 한자가 뭐게?

친구B : 병든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고쳐주는 거니까, 흰 백(白)자에 몸 신(身)자를 써서 백신(白身)이지!

친구A : 야이 바보야! 몸 신(身)자는 맞는데, 백신 안에는 바이러스를 치료해 주는 물질이 엄청 많이 들어있으니까, 일백 백(百) 자를 써서 백신(百身)이지!

친구C : 너희들 지금 농담하는 거지? 친구들아, 백신(Vaccine)은 영어 단어야. 한자가 없어. 우리가 어렸을 때 왁찐(ワクチン)이라고 불렀던 거랑 같은 거야.

친구A : 농담이냐니? 요 쌔끼 요거, 우리가 고졸이라고 무시하네! 넌 대학물도 먹었다는 놈이 중학교 수준의 이런 기초적인 한자도 모르냐?

친구B : 그러게! SKY 별거 없네!

친구C : ...

농담이지? 농담이라고 말해줘...

TV에서 모 정치인이 어떠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친구A : 저 정치인은 정말 나쁜 놈이야.

친구B :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저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를 수가 있을까?

친구C : ? 아직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 뿐이니까, 아직 확실히 저런 짓을 저질렀다는 게 아니잖아. 저 사건은 정황상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범죄 사실이 입증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친구A : ? 뉴스에서 혐의가 있대잖아. 그 말인 즉슨, 나쁜 놈이라는 거잖아?

친구B : 그러니까. 넌 왜 뉴스를 보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제대로 못 알아듣냐? 이 헛똑똑이야, 텔레비랑 유튜브에서 나오는 말은 거의 다 진실이야.

친구C : 뭔 소리야? 혐의를 받고 있다는 건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의심받고 있는 단계라는 의미일 뿐이야. 재판이 완료돼서 범죄 사실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죄가 없는 것으로 가정해야지. 어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범죄자 취급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재판이 끝나고 구형이 완료되어서야 비로소 범죄자가 되는 거지.

친구A : 야, 니가 무슨 법대 나와서 사시 패스한 판검사나 변호사라도 돼? '혐의'라는 단어의 뜻을 왜 니가 맘대로 정하냐? 전국에서 제일 머리 똑똑한 기자들이랑 앵커들이 뉴스 나와서 친절하게 저 놈은 나쁜 놈이라고 알려주는구만, 넌 대체 왜 저 놈이 범죄자가 아니라는 거야?

친구B : 그러게! 너 바보냐? 혐의가 있다는 건 나쁜 짓을 저지른 범죄자라는 뜻이잖아! 멍청한 나도 아는 걸 책도 많이 읽은 네가 왜 모르냐?

친구C : ...

제발 농담이라고 말해달라고...

혐의(嫌疑)

싫어할 혐(嫌), 의심할 의(疑)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을 가능성.

이 술자리와 산으로 가버린 대화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시대여... 지성이여...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외눈박이들만 있는 세상에서는 두눈박이가 비정상인 법이다. 왠지 술이 잘 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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