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꽁꽁 묶여있었고, 발에는 쇠고랑을 차고....이원록(이육사) 독립운동가 후손 이옥비 님아버지가 한 발자국 다가오시더니"아버지 다녀오마" 이렇게 이야기하셨던...그게 마지막이었어요.강석대 독립운동가 후손 강정교님 :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도 독립군으로 다니다가 그렇게 되어버리고저 흥남형무소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그 이야기만 하면 내가 저녁에 잠을 못 자요.오늘도 저녁에 잠자긴 틀렸어요, 내가.신재호 독립운동가 후손 신정윤님 : 증조할아버지께서 일제에 결국 발각이 돼서 수감이 되시잖아요.그리고 몸이 안 좋아지셔서 결국에 돌아가시게 되고죄수복을 입고 있다는 그 이미지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게정말 너무나도 슬프죠.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채 차가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들.그로 인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옥중의 죄수복 차림으로 남아있습니다.빙그레 마케팅 광고기획팀 전혜성 : 옥중에서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분들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신 영웅분들을 위해서죄수복이 아닌그분들께 걸맞은 옷을 선물해 드리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 이분들이 살아계셔서 '광복'을 맞이하셨다면어떤 옷을 입으셨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그분들의 마음을 담아서 아주 귀한 옷감, 최고의 옷으로 지어드리고 싶었습니다.나라를 위한 희생정신, 소목빛.어려운 환경 속 피어났던 절개, 쪽빛.독립을 위한 간절한 희망, 치자빛.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담은 색과그들이 입어 마땅했을 귀한 옷감으로세상 하나뿐인 의복을 만들었습니다.그리고, 마침내 벗은 빛바랜 죄수복.
독립운동가 강석대 (1857-1920) 강원도 화천군에서 거사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한 독립운동가.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 순국하였다.독립운동가 고수복 (1911-1933) 1930년대 공장 노동자로서 노동운동에 매진한 독립운동가. 병보석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여 순국하였다.독립운동가 신채호 (1880-1936) 신민회 위원, 광복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권업신문 주필로서 애국일을 고취하였으며 한국의 근대민족사학을 확립한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 순국하였다.독립운동가 이원록 (필명 이육사) (1904-1944)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이육사라는 이름으로 청포도 등 30여 편의 시를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운 독립운동가.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 순국하였다.아버지가 쓴 시 '청포도'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내가 바라던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이제야 청포를 입고 나를 찾아오셨네요.어머나, 할아버지 한복 입으셨어.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손자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아휴, 참...너무나 고마워요.오랜 시간 끝에 도착한, 그토록 바라왔던 광복빛을 되찾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후손들의 품으로 전해졌고자랑스러운 이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며광복을 전해드립니다.
빙그레는 독립운동가분들의 뜻을 잊지 않고 계속 전해가겠습니다. 빙그레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장학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옥중에서 순국한 기록이 있는 독립운동가 중 수형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여든일곱 분의 사진을 복원하였고, 공훈전자사료관 내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은 광복을 입은 모습의 사진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공훈전자사료관,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자료 기준) '처음입는광복' 캠페인을 위해 제작된 실제 한복은 생존 독립운동 애국지사 여섯 분께 전달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