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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바둑 도사 이야기

by cutekorean 2025. 1. 2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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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산 바둑 도사 이야기

    계룡산에 자칭 도사들이 득실거리던 옛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계룡산에서 내려왔다는 도사 한 사람이 대전시에 있는 한국기원을 찾아왔다. 도사는 머리에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썼으며 무명 두루마기에 버선을 신은 유별난 차림새였다. 자칭 계룡산 도사는 기원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원장부터 찾았다. 한국기원 대전 지원의 원장을 맡고 있던 프로기사 김태현 3단이 나가 맞으니 도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내 속성(俗姓)은 강(康)씨이고, 계룡산에서 20년간 수도했소. 여가 중 틈틈이 바둑을 익혀 그 이치를 터득했는데, 마침 대전에 나온 김에 세상 사람들에게 몇 수 지도해 주고 싶소. 이곳에서 제일 잘 두는 사람을 소개해 주시오.”

김태현 3단은 웃음이 나왔으나 꾹 참고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계룡산에도 바둑을 두는 사람이 많습니까?”

“많지는 않지만 고수 몇 분이 계시지요.”

“거기서 제일 잘 두는 분은 누구십니까?”

“신도안에 박(朴)도인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제일 잘 두지요. 아마 세계 최고수일 겁니다. 나는 스승인 그 분에게 두 점을 깔고 두는데, 이겼다 졌다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대전에서 제일 잘 두는 김태현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디 한 판 두어 보시지요.”

김태현 3단은 상대에게 몇 점을 깔라고 할까 잠시 망설였다. 프로기사는 구경하기도 귀한 시절이라 아마추어는 동네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고수라 해도 프로에게는 네댓 점 이상 깔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계룡산 도사는 몇 점을 깔기는커녕 자리에 앉자마자 서슴없이 백돌 통을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 바둑에서는 상수가 백돌을 쥐는 게 예의고 관례다. 가소롭고 황당한 일이지만 김태현 3단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도인인지라 일단 참기로 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기원 손님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기사인 원장이 흑을 잡고 바둑을 두다니, 굉장한 고수가 나타났구나!”

기원 손님들이 바둑을 두다말고 우르르 몰려와 구경을 했다.

 

막상 대국을 해보니 계룡산 도사의 실력은 터무니없었다. 정석도 포석도 모르는 9급 정도의 하수가 프로기사에게 백을 들고 덤볐으니 판이 될 리가 없었다. 몇 십 수 두기도 전에 계룡산 도사의 대마가 죽었으며, 바둑이 끝났을 쯤에는 바둑판 위에 살아있는 돌이 하나도 없었다. 낯이 벌개진 계룡산 도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이상한 일일세. 20년 수도한 내 바둑은 세상에 나오면 무적일 텐데, 어찌 이리 하나도 살지를 못했는고. 필시 상제신(上帝神)이 노하여 내 심안(心眼)을 가린 것이 분명하다.”

도사는 갓을 고쳐 쓰고 옷깃을 바로잡은 다음 눈을 감더니 중얼중얼 주문을 외었다. 얼마 뒤 눈을 뜬 도사는 이번에는 흑돌을 들고 다시 한 판 두기를 청했다. 그러나 주문을 왼 효험도 없이 이번에도 죽은 돌만 가득한 몰판으로 져버렸다. 결국 한 점 두 점 까는 접바둑으로 두기 시작해 아홉 점까지 내려갔어도 계룡산 도사는 김태현 3단을 이기지 못했다. 계룡산 도사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자리를 떴다.

그러고 열흘 쯤 지난 뒤의 일이다. 이번에는 계룡산에서 제1의 바둑 고수라는 박도인이 찾아와 대국을 청했다. 제자를 대신해 스승이 리턴 매치에 나선 셈이었다.

“지난번에 내 제자인 강도인이 아홉 점을 놓고 뒀는데도 졌다고 들었소.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일이오. 수십 년 동안 산 속에서 수도한 사람이 어찌 속인들에게 질 수 있단 말이오. 어디 한 판 두어봅시다.”

이번에는 김태현 3단이 단호하게 말했다. 바둑은 산에서 혼자 수도했다고 해서 잘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 뒤 7점을 깔게 했다. 박도인은 반신반의하며 7점 접바둑을 두었는데,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첫판을 무참하게 진 뒤 서너 판을 더 두었는데도 박도인의 일방적인 참패였다. 넋이 빠져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박도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허, 어찌 이리 되었는고. 나는 이제까지 계룡산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세상 참 넓구나. 헛 세상을 살았어, 헛 살았어….”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계룡산 도사는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이코리아(https://www.ekoreanews.co.kr)

    출처 : [바둑 인문학 (1)] 고수는 감추고 하수는 뽐낸다 - 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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