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아기는 부모의 스승이다.' 아이에게 배우는 큰 깨달음, '네가 나보다 낫구나!'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이치(理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갓난아기 시절 부모와 타인의 보살핌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로서 교육받고 자라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놀라운 초능력이 있다.
내 부모와, 내 형제 자매, 내 자녀의 고통을 마치 내 고통처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이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의 경계가 내 육신에 머물지 않고 확장되어, 내 가족마저 '나'라는 존재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고통스러워 할 때 나 또한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받고 있는 가족이 내 수족과 같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니지만, 남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아프게 공감하여 느낄 수 있는 초능력이야말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가진 가장 놀라운 능력이다.
고통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고, 아픔을 어루만져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인 것이다.
비단 아픔만 공감할 수 있는가?
기쁨도, 행복도, 나눌수록 배가 된다.
남이 기쁘면 나도 기쁘고, 남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그 기뻐하는 대상이 나와 가까운 가족일수록 더욱 행복은 커진다.
따라서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자녀의 탄생으로 인한 기쁨을 접하기 힘든 현대 핵가족 사회는 과거 농경시대의 대가족 사회에 비해 공감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가까운 가족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릴 적부터 배우지 못한 탓에, 자연스레 사회에서도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나(我)와 다른 사람(他)의 경계는 무엇인가?
만약 '나'의 영역이 내 육체의 경계를 초월하여 '나와 다른 개체'인 내 가족까지 포괄할 수 있다면, '나'의 경계가 더욱 넓어지다 못해 얼핏 나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남'에게까지 확장될 수 없을 것은 무엇인가?
내 사랑의 대상이 '내 몸', '내 혈육'까지에만 미치지 않고 더 널리 확장되어 '친구', '지인', 심지어 '모르는 사람', '동물', '식물', 나아가 '돌멩이', '공기', '바람', '바다', '지구의 모든 것', '대자연과 우주의 순리'까지도 포괄한다면, 과연 그러한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과연 타인을 증오하고 미워하며 괴롭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세상 만물 모두가 내 몸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사랑을 품은 사람이, 과연 악(惡)할 수 있을까?
사람은 피 터지는 전쟁터에서 사지를 잃고도 적에 대적하여 맞서 싸울 수 있는 강인하고 놀라운 정신력을 지닌 동시에, 어쩌다 신발 속에 들어간 손톱만한 가시 하나에도 움찔하는 고통을 느끼며, 신발을 벗어 들어 기어코 가시를 집어내야만 한다.
이것은 제 아무리 필사적으로 단련하여 날아오는 발차기와 주먹을 두 눈 부릅뜨고 받아낼 수 있는 격투기 선수 또한 마찬가지이다.
큰 사람이 자그마한 모래 한 톨, 가시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사회에는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어떤 끔찍한 고통을 느끼던 관심도 없고,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즐거움과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조차 존재한다.
내 발바닥에 박힌 가시 하나에는 펄쩍 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혈과 피눈물, 노동력, 희생은 제 돈으로 바꿔먹고, 자신의 곳간과 배때지에 기름기를 채워 넣는 데에만 몰두한다.
자기 몸에 물린 모기 침 한 방의 가려움은 하루종일 짜증나고 신경 쓰이면서도, 다른 사람이 고된 노동에 말라죽어가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 자살로 내몰리는 사회는 방관하는 것이다.
복지를 확장하자고 주장하면 빨갱이인가?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약한 사람을 돕자고 외치는 사람은 모두 위선자인가?
소위 무한한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사회의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핍박하며 생존권을 박탈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굶어 죽을 자유까지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정식품(不正食品 = 불량식품 不良食品)이라도 싼 값에 사서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각자 도생하라'.
이게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과 논리인가?
약육강식이 자연의 섭리랍시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진정 사람된 자가 보일 수 있는 자세인가?
지금 강자의 위치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진정 자신이 영원히 강자의 입장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그 자신 또한 언젠가는 반드시 늙고 추레하게 쇠락하여 사회적 약자가 되리라는 간단한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평생을 다 바쳐 자신만큼은 절대로 약자가 되지 않게끔 재물과 권세를 그러모으는 데에만 집중하면, 진정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정녕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데 관심이 없는가?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대체 우리가 짐승과 다를 바는 또 무엇인가?
사람과 사랑, 나눔과 베풂이 목적이 아니라 부와 권세, 명예만을 좇는 교육이 이러한 악귀나찰 같은 세계를 만들었다.
아이에게 배우는 큰 가르침, '네가 나보다 낫구나'
아기를 출산하여 키울 때, 나는 부모로서의 욕심이 넘쳐났다.
처음엔 소박했다.
'나는 어찌 되어도 좋으니 제발,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예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처로웠다.
'한 번만 눈 뜨고 어미아비를 눈 맞추어 바라봐다오.'
아기가 눈을 뜨자 욕심이 생겨났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 예쁜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아기가 웃음을 보여주니 욕심은 더욱 커졌다.
'응애 울음소리가 아니라 아, 아, 하는 목소리라도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아기가 아부부 소리를 내니 욕심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아빠,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 하는 것은 욕심이려나?'
아기가 '아빠, 엄마' 소리를 넘어서 이것저것 웅얼거리며 말 비스무레한 것을 내뱉기 시작하자 욕심은 폭주하고 말았다.
'유아기에 여러 언어를 들려주어 바이링구얼, 이중언어 습득을 노려볼까?'
아이에게 여러 언어를 사용해 대화를 시도하고, 다양한 언어의 만화와 노래를 들려주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영특했는지 여러 언어를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이 흡수했고, 어느덧 나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능숙해졌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루마니아어 노래를 들려주었고, 함께 즐겁게 따라부르며 익숙해지게 하였다.
어려운 한자 단어나 고사성어를 내뱉어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팔불출답게도, 아이가 영특하다 싶으니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졌다.
'기왕 내가 이야기꾼이니, 세상 천지 만물의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많이 들려주어야겠다.'
공자와 맹자, 반만년 한국사, 금과 달러의 가치,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왕정제와의 차이점, 인간 면역 체계와 음식물 소화 과정, 블랙홀의 생성 원리, 미시세계와 양자역학, 슈뢰딩거의 고양이, 한글의 아름다움, 한자의 생성원리, 수학과 핵폭탄, 소수와 전자의 위치 관계의 비밀, 다중 차원과 반물질, 성경과 불경, 그리스 로마 신화, 세계의 각종 귀신과 괴물 이야기 등등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미취학 아동에게 닥치는 대로 재밌는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매일 두 시간 이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니 아이는 부모의 꿈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부모의 욕심껏 지식을 쏟아붓는 과정에서도, 평소 아이에게 '배움 또한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한 방 먹었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던 도중이었다.
책을 읽다 또 이야기 보따리가 터져 나왔다.
나 : "일제강점기의 수탈로 괴로웠지만, 1945년 8.15 광복으로 우리는 주권을 되찾았답니다. 하지만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 끝난 뒤 잿더미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금이나 석유처럼 땅 파서 나오는 귀한 자원을 팔아 돈을 벌 수 없었어요. 가진 자원이 별로 없었거든요. 첨단 기술이 없어 공장도 짓지 못했고, 땅을 경작해 농사를 짓기도 버거웠지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세계에서 가장 못 살았던 대한민국이 성장하여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녀를 잘 교육하여 '똑똑한 사람'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길 밖에 없다고 믿었답니다. '네가 우리 집안의 기둥이다', '너밖에 믿을 구석이 없다'. 모든 부모가 자기는 배곯아도 자녀에겐 밥 한 술 더 떠먹이며 힘들게 공부를 시켰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공부에 힘썼고, 똑똑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대한민국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수십 년 만에 세계에서 열손가락에 꼽는 부강 대국이 되었어요. 아이는 학교에 가게 되면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어 초, 중, 고 12년간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거치며 수학능력시험이라는 큰 시험을 향해 달려가게 된답니다. 거의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좋은 대학에 가고, 몸 편하게 마음 편하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길 원한답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 결국 가장 큰 효도는 몸 건강히 공부에 힘써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랍니다. 공부해서 출세하여 성공을 이루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이때, 여섯 살 아이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하던 말을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것 아니었어요?"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을 받았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 : "맞...아요. 다른 사람을 위하고 베푸는 마음이 첫 번째이지요. 그러나 내가 배곯고 가난하면 나누는 마음 또한 사라질 수밖에 없답니다. 내가 성공하는 것도 중요해요... 남을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만큼은 아니지만요..."
말을 잇는 동안 부끄러웠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내가 이 거대한 아이 앞에서 부모랍시고 잘난 척 알량하고 조막만한 지식 나부랭이를 나불대고 있었던 것인가.
세상의 원론적인 이치를 이해하고 있는 아이에게, 고작 지식 따위를 주입하겠답시고 깝을 치고 있었던 것인가.
이미 이 아이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고 큰 깨달음이 있는데, 예수님의 큰 사랑이 아이의 마음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데, 나 따위가 뭐랍시고 이 위대한 마음을 지닌 아이를 가르쳐 보겠다고 이깟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단 말인가.
감히 나 따위가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에게 세속의 성공이 중요하다는, 이딴 설교 따위를 늘어놓았단 말인가.
부끄러움이 눈앞을 가려 앞이 캄캄했다.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다. 대체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일곱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재우고, 그날 나는 침실에서 나와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사색으로 밤을 새웠다.
겸손하자.
더욱 겸손하자.
잘난 체 하지 말자.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겸손하리라.
이 아이는 머지않아 내 머리 꼭대기에 틀어 앉아서 곧 세 치 혓바닥으로 부모를 갖고 놀 아이로구나.
공부니, 돈이니, 성공이니, 아이에게 이따위 세속의 더러움을 가르치는 것은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고, 꿈과 환상의 아름다움, 올바름과 사랑의 미덕을 더욱 깊이 가르치자.
아이의 마음이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뜨겁게 제련되고, 세차게 불타오르다 차갑게 식어 굳은 강철같이 단단해졌을 때, 비로소 세상의 어둠을 가르치자.
이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자비심의 큰 그릇에 실수로 구멍이 나지 않게끔 조심스레 갈고 닦아,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굳센 태산과 바위같이 큰 마음을 굳건히 유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섣불리 국영수니 시험이니 성적이니 나발이니 하는 것들을 들이밀지 말자.
하늘이시여, 내게 이 큰 보물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모자란 부모에게 이런 큰 스승을 자녀로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야, 고맙단다.
네가 뱃속에서 꼼틀거릴 때, 네가 첫 숨을 쉬었을 때, 첫 울음을 터뜨렸을 때부터 널 사랑해 왔단다.
나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마음으로 돈만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왔던 내게, 진심으로 타인을 깊이 사랑한다는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네게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단다.
네게 감히 바라지 않으마, 네게 욕심부리지 않으마.
내가 너에게 과한 욕심을 부려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네가 이미 하늘의 도리를 크게 깨우쳤으니, 세상의 이치를 더 많이 알려주려고 다그치거나 닦달하지 않을게.
너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와 이미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삶이라는 소풍을 마음껏 만끽하며 세상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즐길 수 있도록 전심전력으로 응원하고 사랑할게.
네가 성장하여 세상에 나아가 세속을 초월한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내가 미력하나마 성심성의껏 도울게.
사랑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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