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모기에 대한 소고] 내 아이의 피 한 방울 빼앗긴 것이 억울해서 쓰는 이야기
나는 어릴 적부터 모기에 잘 물리는 체질이었다.
그냥 잘 물리는 체질 정도가 아니라, 내 피가 모기 놈들에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향긋한 냄새라도 풍기는 건지, 학창 시절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를 열면 수백 명 다른 아이들 놔두고 새카만 모기떼가 내 주위만 쫓아다녀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혹시 나한테서 냄새가 나나?' 싶어 아무리 깨끗이 박박 씻어봐도 모기 많이 물리는 데에는 소용이 없었다.
그럼 붓거나 가렵지나 말던가, 붓기는 왜 또 그렇게 퉁퉁 붓고, 가렵기는 왜 또 그렇게 가렵던지.
그래서 항상 모기를 미워하며 살았고, 여름과 초가을이 싫었다.
눈도 안 오는 부산에서, 항상 내리지도 않는 눈을 그리워하며 여름내 겨울을 그리면서 '될 대로 돼라' 하며 피를 빼앗겼다.
성인이 되어 사랑을 하고, 지금의 배우자 님을 만났다.
상대적으로 추운 지역에서 살던 배우자 님은 나와 정 반대의 체질을 가진 사람으로, 평생 모기에 물리는 것을 신경 써 본 적이 없다는 듯했다.
잘 물리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모기에 물려도 가렵지도 않고, 여드름보다도 작은 붓기가 조금 올라오다 이내 사그라드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부러워...!)
그래서 그런가? 벌레 뜯길 걱정에 더불어 추운 가운데 따스함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여 겨울을 사랑하는 나와 달리, 배우자 님은 찬란히 눈부시고 뜨거웁게 땀흘리며 바다와 아이스크림과 빙수와 바람의 시원함을 즐길 수 있는 여름을 사랑했다.
모기 뜯기지 않는 체질이라니!
물려도 가렵지 않는 체질이라니!
너무 부러운 체질이었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와 당신이 함께 있으면, 모기 놈들은 나를 물었으면 물었지, 당신을 물지는 않을 테니까.
모기 물리는 귀찮은 고통에서 당신을 건질 수 있어서, 나는 내 평생을 괴롭혀 온 내 '모기 끌어당김 체질'이 사뭇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기의 첫 피를 보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힘든 난임 치료 과정 속에서 어렵게 아기가 태어났다.
다소 순조롭지 못했던 출산 과정에서 본 대량의 출혈은 불가항력이니 패스. 😅
한창 자기 손을 다룰 줄 모르는 2개월 아기가 허공을 움키다 제 얼굴을 할퀴어 바알갛게 부어오른 자국을 보고 있자니, 애기용 손싸개를 단디 챙겨 싸매주지 못하고, 죽순 마냥 금방금방 자라는 아기의 손톱을 제때 깔끔하게 깎아주지 못한 게으른 부모의 경각심이 요동을 쳤다.
어느 날, 거실에서 빨래를 개비고 있는데 갑자기 배우자님이 안방에서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기에 급히 뛰쳐 들어갔다.
뭔 일인가 싶어 들여다 보았더니, 어두운 간접조명 아래서 고이 잠든 아기의 손톱을 조심조심 깎다가 살 끝을 살짝 베어 피가 한 방울(도 아닌 반의 반 방울) 난 것이었다.
내가 급히 알콜 스왑을 가져와 소독해 주고(신생아에게는 빨간약 포비돈 요오드 용액이나 베타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꼭 눌러 지혈되는 30초도 안 되는 순간, 배우자 님은 메두사 얼굴이라도 들여다 보았는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자기, 왜 그래요. 이제 피 멎었어요. 괜찮아요. 아기 하나도 안 아팠을 거예요. 봐요, 깨지도 않았잖아요."
배우자 님의 떨군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랜 연애기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당신의 눈물.
무릎을 꿇고 아기 앞에 머리를 숙인 채 달기 똥만큼 커다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왜 울어요... 울 필요까진 없어요. 아기 괜찮아요. 잠 새근새근 잘 자는 것 좀 봐요."
배우자 님은 내가 가져다 준 손수건을 받아 들지도 못한 채 한참 동안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내가... 너무 미워요. 나 자신한테 너무 화가 나요. 조심조심 깎는다고 깎았는데, 조금만 더 조심할 걸. 손톱 긴 게 뭐라고 그걸 짧게 못 깎아서 안달내다 이 작은 애기한테 상처를 낸 건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조급하게 서둘다 이 사달을 낸 건지. 이 아기는 아직 제대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잖아요. 아프면 아프다 말도 못 하고, 아직 응애 우는 소리 밖에 내지 못하는 아기한테 피를 보게 하고... 나는 나쁜 부모예요! 아팠을 텐데, 알콜 솜으로 닦으면 분명 따가웠을 텐데...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프다 말도 못 하는 아이한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참지 못하고 끝내 와앙 울음을 터뜨려 버린 배우자 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위로해 주었다.
"아니, 이 아이가 앞으로 크면서 얼마나 많이 다치겠어요. 놀이터에서 뛰다 넘어져 무릎 까질 일도 잦을 것이고, 어디서 친구랑 다투다 얼굴을 할퀴어 돌아올 날도 있을지도 모르고, 거세게 놀다 보면 뼈도 부러질 수 있는 게 사람 삶인데, 고작 피 한 방울 흘린 것에 이렇게까지 크게 슬퍼하면서 심력을 쓰시면 어떡해요. 정작 아기는 잠만 잘 자고 있는데, 부모가 지레 마음 약해서 이렇게 펑펑 울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기를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요."
"그래도... 이 애는 아직 아프면 아프다고 말도 못 하는 앤데... 자기 고통을 털어놓지도 못하는 아기한테 상처를 입히고 피를 보게 했다는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요."
"여보, 아기 얼굴 봐요. 새근새근 잘 자고 있지요? 애기 안 아파요. 피 멎었어요. 젖 달라고 보채면서 우는 허기가 애기한텐 손가락 끝에서 난 피 한 방울보다 훨씬 큰 고통이에요. 걱정 마요. 아기는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지 영원히 기억하지도 못할 테니까."
"...그럴까요?"
"당연하죠."
겨우겨우 울먹이는 배우자 님을 달개고 지혈된 아기의 손에 손싸개를 덮어주면서, 천사처럼 잠든 얼굴을 둘이 함께 한참 들여다 보았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색색 잘도 잤다.
엉망진창 다치며 살다
배우자 님은 몸놀림이 좀 둔하다.
날씬한 주제에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어리바리 해 정강이나 팔꿈치 같은 곳을 여기저기 콩콩 찍고 시퍼렇게 멍이 들기 일쑤다.
얼마 전에도 계단에서 거의 구르듯 무릎을 찍는 바람에, 손바닥만 한 보라색 멍이 크게 들었다. 🤔
나는 상대적으로 기민했지만, 출산 후 엉망진창 쪄버려 둔해졌다. 😅
나는 잔 상처는 잘 생기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 어디 찍히면 살이 패이고 움큼 뜯겨나갈 정도로 크게 다치곤 한다.
1년 전에도 돌바위 위에서 크게 넘어져 정강이 살점이 500원 동전만 한 크기로 떨어져 나갔다. 😭
아이는 다행히 성미가 잽싸, 큰 사고는 빠르게 캐치해 피해낼 수 있는 것 같다.
대신 힘차게 뛰놀고 구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예쁜 무릎에 온통 멍자국, 긁힌 자국이다.
흉도 어쩜 그리 잘 남는지, 상처가 덧나지 않게 메디폼으로 꼼꼼히 덮어주어도 흉이 잘 사라지지 않는다.
험하게 몸 쓰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 투성이인 가족이다.
모기... 항상 모기를 조심하십시오, 휴-먼.
평생토록 지독하게 미워했던 모기 놈들.
하필이면 아기는 모기 독에 알러지 반응이 심한지, 어쩌다 한 번 모기에 물리면 별로 가려워 하지는 않는데 마치 벌에 쏘인 것 마냥 퉁퉁 붓고, 살짝 흐를 정도로 진물이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반경 100m 이내의 모든 모기를 빨아들여 주변 사람들은 모기로부터 안전해지고 나만 디립다 뜯기는 초능력을 지닌 내 체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몇 년간 모기에 피 빨리는 일 거의 없이 여름을 지내왔다.
심지어 놀러 갈 때나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갈 때에도 모기는 나만 열심히 물어댔다.
나는 뭐 어차피 평생 이렇게 모기한테 뜯기면서 살아왔으니까, 괜찮아.
아마 배우자 님이 아이의 옷에 모기 기피제도 열심히 뿌려주고, 모기를 쫓아준다는 스티커? 패치 같은 것도 항상 잔뜩 붙여주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무리 뜯겨도 차라리 피 빨리고 말지, 찝찝하게 끈적 미끌 묻어나는 약품을 몸에 뿌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항상 그냥 '모구 양반들, 내 피 빨아 묵는 것은 괜찮은데 제발 덜 가렵게 좀 빨아가소.' 하는 마음으로 그냥 보시 공양한다 생각하고 내 피를 자연에 환원했다.
하긴, 모기 중에 피 빠는 것들은 죄다 알 밴 암컷이라는데, 자식 가진 어미 심정이 얼마나 필사적이랴.
제 놈들도 먹고 살아야 하겠고, 자식 새끼 먹여 살려야겠지.
내가 내 것 아끼는 마음 마냥, 저것들도 제 것 아끼려는 마음이 있겠지.
어느 날 신나게 가족 여행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 여느 때와 같이 잔뜩 뜯겨 벅벅 긁어대는 나를 보고, 아이가 뒷자리 카시트에 앉아 물었다.
"아버지 어머니 괴롭히는 모기, 나빠요. 모기 그냥 멸종시켜 버리면 안 돼요? 우리에겐 모기약과 과학이 있잖아요."
평생 모기를 미워한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게요. 모기는 정말 미워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세상에서 인간을 제일 많이 죽인 동물이, 상어도, 악어도, 사자도, 호랑이도 아니고 바로 모기래요! 모기가 옮기는 병인 말라리아나 뎅기열, 일본뇌염 같은 질병들이 흑사병보다도,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죽였대요. 모기를 다 죽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안 그래도 머리 좋은 과학자들이 모기를 멸종시켜 버리려고 연구하고 있고, 거의 성공 단계에 이르렀대요!"
마침 얼마 전 불임 유전자를 퍼뜨리고 감염시켜 무리 집단을 괴멸시킬 수 있는 유전자 조작 모기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 터라 아이에게 그리 말해 주었다.
[PICK사이언스] 과학계가 공들인 '모기 박멸 기술' .. 부작용은 없나 YTN 사이언스
정말 인간이 모기를 멸종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 집에 돌아와 함께 컴퓨터를 켜고 '모기 멸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충격적인 과학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만약에 모기가 모조리 없어진다면? '지.구.멸.망'
얼어붙은 동토는 아니지만 북극과 남극에 가까운 드넓은 툰드라 초원지대에 사는 대형 초식동물들이 풀을 남김없이 다 뜯어먹으면 초원이 복구되지 못할 정도로 황폐화 되는데, 넓은 습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부화하여 개체수가 심각하게 많아진 모기떼가 순록의 피를 빨아 말려 죽일(!?) 정도로 괴롭히고 극성을 부려야만 순록들이 모기떼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기 때문에, 초지의 풀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고 툰드라 지역의 자연 환경과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
툰드라 지역에서 흡수하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넓은 초지에서 생산되는 산소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모기가 대형 초식동물을 괴롭혀 이주를 강제하지 않으면 초식동물들의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 툰드라 지역은 점점 사막화되고, 지구 생태계와 지구 온난화에도 크나큰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모기를 멸종시켜 버리면 지구의 먹이사슬과 자연 생태계가 모조리 무너져 버릴 수도 있대요. 모기를 멸종시킬 수 있는 기술은 거의 다 완성되었는데, 정말로 멸종시켜 버리면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시행할 수 없는 거래요."
아쉬워 하는 아이의 반응.
"에이, 아쉽다. 아버지 어머니 괴롭히는 모기들, 싹 다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생태계가 무너진다니, 어쩔 수 없죠. 조금 괴로워도 더불어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쪼꼬만 게 어른스럽기는.
"그러게요. 안타깝지만, 미워도 같이 살아가야겠네요."
모기 패치는 모기 퇴치 효능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던데, 딱 하루 안 붙였을 뿐인데...
올해, 2024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강해진 고기압이 2중으로 덮어 싸 가마솥 마냥 극심히 달궈진 한반도의 대지는, 다가오는 태풍까지 모조리 튕겨내며 지독한 더위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올 여름 우리 가족은 모기에 한 번도 물리지 않았다.
세상 천지 모든 모기를 유혹해 내고야 마는 강력한 모기 유도 페로몬을 내뿜는 나조차도 한 방을 물리지 않았으니, 이번 여름이 지독히도 덥긴 더웠나 보다.
그런데 2주 만에 30도 넘게 떨어져 가을이 실종되고 초겨울 날씨가 다가오니, 뜬금없이 모기 놈들이 뒤늦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날도 선선해졌으니 이제 괜찮겠지' 싶어 딱 한 번 모기 퇴치용 패치를 붙이지 않고 유치원에 갔다 온 아이.
며칠 전, 식약처 발표에 따르면 '뿌리는 모기 기피제 이외에 옷 위에 붙이는 스티커형 모기 패치는 별로 모기 퇴치의 효과가 없다'는 내용의 뉴스를 보았기에 마음이 해이해져 방심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날 감나무 과수원에서 감 따기 체험학습을 하는 바람에 모기한테 덕지덕지 물어뜯겨 퉁퉁 부어 돌아왔다.
그놈의 모기 기피 패치 스티커 몇 개 붙이는 데 몇 초나 걸린다고, 그걸 빼먹어서 애기를 이렇게 물어뜯기게 만들었냐!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 속은 타들어갔다.
모기 물린 데 진정효과가 있다는 스티커 밴드를 붙여주며, 모기 놈들에 대한 미운 마음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난 간지러워도 걍 참으면 되지만 이 망할 것들이, 감히 한 방울 한 방울이 귀한 내 새끼 선지를 빨아 묵어? 아깝게 스리!
그리고, 어젯밤, 모기의 배신! 너네 원래 나만 물었잖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모기 한 마리가 보였다.
제법 큼지막한 것이 넘의 피 잘 빨게도 생긴 녀석이었다.
평소엔 평생토록 단련해 온 번개 같은 스피드의 모기 사냥용 박수치기로 모기를 잘 잡아냈지만, 며칠 전 유치원 가을맞이 가족 운동회에서 너무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아직 잔잔히 남아있는 몸살기에 뼈 마디와 삭신이 쑤시는 바람에, 어제 따라 몇 번의 사냥 시도 끝에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일찌감치 잠든 저녁, 캄캄한 새벽 밤중에 '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모기가 방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까 그 모긴가? 크던데. 물 텐데. 잡아야 하나?'
순간, 전날 직장에서 어려운 일이 있어 고생했다는 배우자 님의 말이 떠올랐다.
모기 잡겠답시고 침실의 불을 켜서 배우자 님의 단잠을 방해하기 싫었다.
'에이, 모르겠다. 물 테면 물라지. 어차피 배우자 님은 모기가 잘 물지 않으니, 애기 이불만 단디 덮이고 내가 이불을 안 덮고 몸을 드러내놓고 자면, 나만 물겠지. 모기는 같은 공간에 사람이 몇 명이 있건 간에 무조건 나만 무니까.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선 기겁을 했다.
나와 배우자 님의 몸은 한 번을 안 물어뜯어놓고, 아이의 팔다리와 귀, 뺨에 네 방이나 모기가 물린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니, 젠장, 야 이 모기 놈들아, 평생 날 그렇게 괴롭혀 놓고, 이렇게 날 배신하기 있냐? 지금까지 무조건 나만 물었잖아!'
주변 사람들은 모기에 안 물리게 하고 나만 몰아서 모기에 물리던 내 강력한 모기 유도 유전자와 내 피 맛보다, 내 자식의 피맛이 더 달콤했나 보다.
퉁퉁 부어 진물이 나는 아이의 모기 물린 자욱에 붓기 진정 패치를 발라주며 분을 삭인다.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모기도 감기 앓듯 많이 물려 버릇 해야 내성이 생겨서 알러지 반응이 줄어들겠지...'
(사실이 아니다. 보통 알레르기 반응은 반복될수록 점점 심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내 자신을 위로하려 생각한 자기 합리화다.)
아기를 유치원에 보내고, 비장히도 전기 모기채를 집어든 나는 속으로 새롭게 다짐을 했다.
'비록 모기들을 절멸시키는 것은 생태계 파괴가 두려워 감히 못 한다지만, 요 미운 모기 년 하나 만큼은 내 귀한 자식 피를 넉 차례나 빼먹은 댓가를 톡톡이 치르게 해 주마! 다시는 감히 내 새끼 피를 빨지 못하도록, 이 집안 어디에서도 살아남지 못하게 철저히 박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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