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마시는 새, 짐새의 전설과 뉴기니섬의 피토휘

독을 마시는 새, 짐새의 전설과 뉴기니 섬의 피토휘

독이 있는 조류, 짐새의 기원

중국의 고대 전설에서는 맹독을 가진 새, 짐새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1809년 출간된 백과사전, 삼재도회 (三才圖會)에 묘사된 짐조. - 출처 : 위키백과

현재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에 대한 여부도 의문스럽지만, 한자에는 '짐(鴆 짐새 짐)'이라는 글자로 남아있습니다.

짐새의 서식지와 특징

짐새는 중국 남방의 광동성에서 서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크기는 독수리 정도로 녹색 깃털과 구리색의 부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산해경에 묘사된 짐새 삽화. 가장 오래된 기록이며 현존하는 짐새의 기록 중 가장 신뢰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나무위키

몸은 검은빛이고 눈알은 붉은빛으로 살모사와 야생 칡을 먹고살며, 온몸에 독기가 있어 그 새가 논밭 위를 날면 그 아래 작물은 모두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역사 속에서 활약한 짐새의 독, 짐독

짐새의 독으로 만든 독을 짐독이라고 하며, 그 독으로 만든 술을 짐주(鴆酒)라고 합니다.
짐주로 사람을 독살하는 것은 짐살이라고 하였는데, 예전부터 자주 암살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짐독은 무미 무취인 데다가 수용성이며, 짐조의 깃털을 한 장 담가 만든 독주로는 들키는 일 없이 상대방을 죽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짐조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불위의 초상 - 출처 : 위키백과

특히 진시황의 노여움을 산 재상 여불위가 스스로 짐주를 마시고 자진한 사건은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 중 짐독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록입니다.

삼국지에서도 동탁이 짐독을 이용해 황후를 독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멸종된 새, 짐새는 전설상의 새?

중국 역사에서 짐새는 대륙의 남쪽에 서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원의 지배자들은 짐새가 양자강 이북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검역했으며, 서식지가 발견되면 산을 통째로 불태우는 등 적극적인 방역절차로 모조리 죽여 없앴다고 합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짐새 삽화 - 출처 : 나무위키

그 결과 남북조 시대를 끝으로 더 이상 짐새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며, 659년에 간행된 의약서인 신수본초(新修本草)에서는 이미 짐새의 행방을 전설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짐새의 실체는? 과연 존재했을까?

그러나 조류학자들에 따르면 새 중에서 그렇게 강한 독성을 가진 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짐조는 예로부터 용이나 봉황처럼 단순한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뉴기니 섬에 사는 두건 피토휘. 만지면 닿은 부위에 약한 마비 증세를 보인다. - 출처 : 위키백과

하지만 1992년, 뉴기니섬의 원주민 사냥꾼들이 예로부터 먹을 수 없는 새로 여기고 만지기 꺼려하던 피토휘라는 새의 깃털에 독이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찍이 전설로 치부된 짐조가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뉴기니섬에 서식하는 독을 마시는 새, 피토휘

피토휘는 때까치딱새과에 속하는 조류로, 뉴기니섬에서만 발견됩니다.
이 과에는 총 6종이 있으며, 그중 5종은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건 피토휘의 모습 - 출처 : 위키백과

피토휘들은 밝은 색깔의 깃털을 가지고 있으며, 잡식성입니다.
특히, 일부 피토휘들은 피부와 깃털에 '바트라코톡신'이라는 신경독의 일종인 강력한 알칼로이드 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분은 화학적인 방어기제로 작용합니다.

깃털 사이를 파고드는 기생충으로부터 몸을 방어하기도 하며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천적인 뱀과 파충류, 인간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사용됩니다.

두건 피토휘 - 출처 : 위키백과

피토휘를 만지면 일시적이고 가벼운 마비증세로 끝나지만, 독 성분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면 중독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피토휘의 깃털은 밝은 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포식자들에게 자신이 독을 가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경계색의 일종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피토휘는 약 23cm의 크기에 긴 다리와 단단한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먹이를 통해 몸에 독을 축적하는 피토휘

피토휘는 몸에서 독을 자체적으로 생성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주된 먹이인 딱정벌레와 독개구리 등을 통해 바트라코톡신 독성분을 얻습니다.

피토휘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바트라코톡신을 자체 생성하는 콜롬비아 황금독개구리 - 출처 : 위키백과

이 독 때문에 피토휘를 먹을 수 없는 새로 여긴 파푸아 뉴기니 사람들은 이 새를 '쓰레기 새'라고 불렀습니다.
피토휘는 현재 세상에서 독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먹이로 몸에 독을 축적하는 생물들

하지만 먹이를 통해 몸에 독소를 축적하는 동물은 피토휘 외에도 존재합니다.
조류는 아니지만 방목해서 키우던 소가 독이 있는 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을 먹었을 때, 그 독소가 우유나 고기에 축적되어서 그것을 섭취한 후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가 밝혀진 바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전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친어머니가 이렇게 독소에 오염된 우유를 마시고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복어 종은 치어일 때 독이 없지만, 불가사리를 비롯한 독소를 지닌 생물을 먹고 체내에 독을 축적하기도 합니다.

짐새는 과연 멸종했을까?

피토휘가 중국 전설 속에서 묘사된 짐새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부 동물들이 독성 있는 먹이를 통해 몸에 독을 축적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피토휘의 존재는 짐새의 전설 또한 전설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실제 과거에 존재했던 새였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세상의 생물들을 모두 모아 무게를 잰다면? 바이오매스 인포그래픽.jpg

세상의 생물들을 모두 모아 무게를 잰다면? 바이오매스 인포그래픽.jpg

[스압] 지구촌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유물과 유적들.jpg

[스압] 지구촌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유물과 유적들.jpg

2023.11.13 - [생활 정보] - 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원시 행성 테이아와 충돌설

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원시 행성 테이아와 충돌설